"몸 낮추고 지내고 있다"…이민자 단속에 조지아 한인들 울분

정혜인 기자
2025.09.08 15:58

WSJ "조지아주 한인 단체 채팅방 불안·분노 쏟아져"…
"'합법적 거주' 한인들까지 불필요한 감시 받게 돼",
"미 취업비자 발급까지 수개월 걸려 공장 완공에 차질"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5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전날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 ICE 홈페이지 영상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으로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의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이 체포·구금되자 현지 한인 사회에 미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불안 분위기가 퍼졌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대차 공장 급습, 조지아의 성장 거점을 흔들다'라는 기사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현지 한인들의 반응을 조명했다. WSJ은 "미 이민 당국의 이번 단속은 자동차 업계와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며 "특히 최근 새로운 한인 커뮤니티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풀러 같은 곳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풀러는 현대차 공장 인근 지역으로 현대차그룹이 55억달러(약 7조6516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약을 발표한 이후 급격하게 변화했다. 2020~2024년까지 4년간 인구는 22% 급증해 3만1000명에 달했다. 지역 관계자들은 "현대차 공장 설립으로 한국인 거주자가 크게 늘었다. 인구 증가분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에게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인 인구 증가로 단 한 곳뿐이었던 한국 음식점이 여러 개로 늘었고, 코스트코 등 대형 마트에는 김치, 김, 만두 등 한국 음식이 판매됐다.

하지만 미 이민 당국의 이번 단속으로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졌다고 WSJ은 전했다. 현지 한인들은 WSJ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가 한국 기업이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한 뒤 발생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드러냈다. WSJ에 따르면 조지아주 사바나 지역 한인 단체 채팅방(약 1400명)에는 주말 내내 불안과 분노가 뒤섞인 메시지가 쏟아졌다. 채팅방에는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사업을 일궜으며,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런데 지지받기는커녕 밀려나는 기분"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약 1500명이 참여한 다른 한인 단체 채팅방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미국 이민당국이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공동으로 건설 중인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소재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해 불법체류자 혐의가 있는 450여명을 체포했다. /사진=미국 주류·담배·총기·폭발물 단속국(ATF) 애틀랜타 지부 X 계정

현지 목사인 김호성 씨는 WSJ 인터뷰에서 "긴장이 느껴진다"며 "한인 이민자들은 문화와 뿌리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성실히 일해 미국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이번 단속은 이를 무너뜨리고 두려움과 분노를 남겼다"고 말했다.

일부는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한인들까지 불필요한 감시를 받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호성 씨 부부는 "이번 사태로 인해, 합법적으로 미국에 있고 이번 사안과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처음으로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거나 판단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들이 나온다"며 "지금 많은 사람이 몸을 낮추고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 공장 엔지니어로 근무하기 위해 2년 전 미국에 왔다는 한국인 부부는 WSJ에 미국의 비자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이번 단속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들은 "현대차의 많은 기계에 한국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은 그걸 쉽게 해주지 않는다"며 "(합법적인 근무를 위한) 취업 비자가 나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이는 공장을 제시간에 완공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4일 공화당원 토리 브래넘의 제보를 받고 현대차 조지아주 공장에 대한 불법 이민자 단속을 실시했다. 국토안보수사국(HSI) 발표에 따르면 이번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475명이 체포했다. 미 당국에 체포·구금된 한국인 대다수는 미국 현지 취업 활동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비이민비자인 단기상용(B-1) 비자 소지자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현재 미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의 조기 귀국을 위한 전세기 투입 세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 오후 미국으로 출국해 미 행정부와 현지 행정 절차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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