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은 악마, 폭력도 불사"→공존 꿈꾼 이 남자...비극적 결말 맞았다[뉴스속오늘]

윤혜주 기자
2026.02.21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가 1963년 5월 1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AP=뉴시스

61년 전 오늘 미국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 말콤 엑스(X)가 연설 도중 총격을 받고 숨졌다.

말콤 엑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틴 루터 킹과 함께 흑인 민권 운동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인물이다. 39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강렬한 메시지는 이후 흑인 청년층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콤 엑스는 한국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흑인 사회에서는 마틴 루터 킹과 함께 최고의 영웅으로 꼽힌다. 다만 두 사람의 지향점은 너무나 달랐다. 킹이 비폭력을 외치며 백인까지 끌어안으려고 한 반면 말콤은 백인과 흑인은 공존할 수 없다면서 흑인이 자유를 얻기 위해선 폭력도 불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1963년 8월28일 흑인 차별에 반대하며 워싱턴DC에서 대규모 평화 시위가 일어났다.

킹은 시위 현장에서 "아이들이 언젠가 피부색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판단되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흑인 차별 철폐를 외치면서도 "백인들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과 묶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를 휩쓴 공격적인 언행이 모든 백인을 향한 불신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냈다.

반면 말콤은 백인과 함께 한 워싱턴 행진을 두고 흑인이 백인에게 굴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킹의 연설 일부를 가져와 "그 어떤 아메리칸 드림도 보지 못한다. 나는 오직 미국의 악몽을 꾼다"고 맞받아쳤다.

사진=말콤 엑스 기념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1962년 LA(로스앤젤레스) 경찰이 비무장 흑인 7명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땐 흑인들도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한 흑인이 세탁소에서 맡겼던 옷을 찾아 나가고 있었는데 이를 본 경찰은 흑인을 옷 훔치는 도둑으로 몰았고 구타를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흑인들이 가담하자 경찰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에 7명이 총을 맞고 1명은 숨졌다.

이에 대해 말콤은 "그날 밤 경찰은 거칠었고 미치광이 같았다"며 "그들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KKK(백인우월주의 행동단체) 같은 강력한 힘이 있다. 1962년이기 때문에 KKK는 흰색 옷을 입을 필요도 없다. 이제 비즈니스 정장을 입을 수 있다. 경찰 제복을 입거나, 변호사일 수도 있다. 그들은 마치 30년 전 KKK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흑인도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에 대해 방어할 힘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말콤은 킹을 '양치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킹은 흑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백인 정치인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말콤은 "백인은 늑대다. 우리는 그들의 양"이라며 "양치기인 목사는 언제나 여러분과 저에게 백인에게서 달아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동시에 백인들과 맞서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여러분과 저를 배반한 반역자다. 우리의 생명을 맡기지 말라"고 맞섰다.

말콤 엑스가 1963년 6월 29일 미국 뉴욕 할렘가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말콤 엑스는 그로부터 2년 뒤 1965년 뉴욕에서 연설 도중 총격으로 사망했다/AP=뉴시스

백인과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말콤의 세계관은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비극적인 경험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말콤의 아버지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와 맞섰던 인물로 말콤의 가족은 KKK로부터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했다. KKK에 의해 쫓겨나듯 이사를 가기도 했고, KKK 습격에 집이 불타기도 했다. "넌 깜둥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백인 교사의 말도 말콤에게 무력감을 안겼다.

결국 말콤은 15살에 자퇴했다. 이후 흑인 빈민가를 전전하며 온갖 허드렛일을 했고, 그러다 절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수감 생활은 말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말콤은 미국에서 이슬람교 선교 활동을 하는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빠졌고, 이들이 강조하는 '백인은 악마'라는 교리를 받아들였다. 말콤은 원래 성이었던 '리틀'이 악마가 준 성이라고 생각해 아프리카에 있는 이름 모를 성이라는 뜻의 'X(엑스)'로 개명했다.

징역을 살고 나온 말콤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따라 흑인과 백인의 분리를 주장하며 흑인 해방운동 지도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킹과 함께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끌었던 가장 영향력 있는 두 기둥이자 양대 산맥을 이뤘다.

그러나 말콤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탈퇴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카퍼레이드 중 저격수에 의해 총을 맞고 사망했는데, 네이션 오브 이슬람 지도자 일라이저 무하마드는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이번에는 말을 아끼자"고 했다. 그러나 말콤은 "당연한 일이기에 슬프지도 않고 오히려 기쁘기만 하다"며 독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갈등이 표출되자 말콤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탈퇴했고, 단체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이후 말콤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이곳에서 말콤은 인종과 관계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무슬림 신도를 보고 자신의 흑백분리론이 잘못됐다고 느꼈다.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미국에 돌아와 흑인과 백인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기구를 설립하기도 했다.

새로운 흑인 민족주의를 지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65년 2월 21일 말콤은 뉴욕 할렘 지역에 있는 오듀본 볼룸에서 연설을 준비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무려 총알 16발을 맞았고 병원에 옮겨졌지만 과다출혈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1965년 2월21일 말콤 엑스가 암살된 직후 체포되는 무자히드 압둘 할림/AP=뉴시스

총격범으로 네이션 오브 이슬람 소속 무함마드 아지즈, 칼릴 이슬람, 무자히드 압둘 할림(토마스 헤이건으로 불림) 등 3명이 지목됐다. 법정에서 할림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으나 아지즈와 이슬람은 무고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아지즈와 이슬람은 각각 1985년과 1987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가운데 할림은 지난 2010년이 돼서야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이후 아지즈와 이슬람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조사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누가 말콤 엑스를 죽였나?'(2020)를 계기로 암살 의혹이 재점화되자, 사이러스 밴스 맨해튼 지검장이 이를 검토하며 전격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아지즈와 이슬람에 대한 유죄 판결이 모두 무죄로 뒤집혔다. 다만 이슬람은 2009년 이미 사망한 후였다.

26세에 투옥됐다가 46세에 석방된 아지즈는 "인생의 전성기였어야 할 20년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로 감옥에 갇혀 살았다"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권 지도자 중 한 명의 살인범으로 낙인 찍혀 55년 넘게 고난과 분개심 속에 살았다"고 분노했다. 아지즈는 뉴욕주를 상대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아지즈와 이슬람은 뉴욕시로부터 2600만 달러(약 370억원), 뉴욕주로부터 1000만 달러(약 142억5400만원)를 지급 받았다. 보상금 총액은 아지즈와 이슬람 측이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말콤은 미국 정부 입장에서 급진, 강경 성향의 반체제 인사였기 때문에 말콤의 암살에 수사당국이 관여했다는 주장도 나왔었다. 결국 맨해튼 지방검찰청 등이 22개월간 재조사한 결과 뉴욕 경찰(NYPD)과 미 연방수사국(FBI)이 두 사람의 무죄를 입증할 핵심 증거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한편 킹은 말콤이 세상을 떠난 지 약 3년 후인 1968년 4월4일 흑인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방문했던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인종차별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당시 킹의 나이도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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