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유가, 수개월 꺼지지 않을 듯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03.12 04:16

美·이란전쟁
종전 실현돼도… 에너지 공급망 정상화 상당한 시간 필요
중동 산유국 '포스트 오일 시대' 대비 고유가 유지도 관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전쟁 조기종료를 시사하면서 국제유가 급등세에 제동을 걸었지만 시장에선 고유가 국면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단순히 전쟁이 끝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과 중동 전략환경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판단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당장 수일 안에 종전이 실현되더라도 에너지 공급망이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부터 문제다. 최근 유가상승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된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고 안전운항을 확보하는 것조차 단기간에 이뤄지기 쉽지 않다.

이란 군부가 해협 곳곳에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고 항로 안전을 군사적으로 검증하는 데만 최소 수주에서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종전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안전운항이 계속 위협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발적으로라도 운항위협이 이어지면 원유공급망 정상화가 위축된다. 전쟁 발발 이후 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는 평소 하루 100척 이상에서 한 자릿수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생산시설 피해복구는 더 큰 숙제다. 중동 산유국의 주요 유전과 정유시설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가동률이 떨어졌거나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했다. 일부 시설은 실제 공격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시설 점검과 복구, 생산재개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조만간 회원국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전쟁 종료 이후 각국이 비축유를 다시 채우려는 대기수요도 유가 하락폭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지난달 27일 기준 4억1540만배럴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10년(7억2600만배럴)의 40% 이상 줄어든 상태다.

11일 태국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던 태국 화물선 마유레 나레호가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스플래시247닷컴 /사진=유세진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조기종전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조기종전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이스라엘과 전쟁목표를 두고 미묘한 전략적 균열이 불거진다. 조기종전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의 군사·핵능력 약화와 이란 친미정권 수립 등 외교·안보성과를 거두는 데 중점을 두지만 이스라엘은 이번 기회에 숙적인 이란의 군사·경제기반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신호와 관계없이 공습의 고삐를 늦추지 않자 트럼프행정부는 이스라엘에 이란의 석유시설을 더이상 공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스라엘 방송 채널13은 이스라엘 보안당국이 이란정권 몰락까지 최소 1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동 산유국들의 유가전략 변화도 변수로 꼽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이 시장점유율을 위해 저유가를 감내하던 기류가 완전히 달라졌다. 저유가가 오히려 지역 내 안보불안을 키우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중시켰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안보강화와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고유가를 유지하려는 행보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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