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없이 되려나" 우려 씻었다…버크셔 '590조 실탄' 향할 곳은

오마하(미국)=심재현 특파원
2026.05.04 05:40

[버크셔 주총 2026]

"버핏 없지만 버크셔는 있다"…'포스트 버핏' 우려 씻어낸 투자의 힘
/로이터=뉴스1

워런 버핏이 없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은 기우였다. 2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버크셔 주주총회 이후 월가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시장에선 '포스트 버핏 시대'가 연착륙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15년째 버크셔의 오마하 주총에 참석했다는 한 개인 투자자는 "더이상 버핏의 농담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버크셔의 가치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버크셔의 올해 주총은 지난 1월 은퇴한 버핏의 후계자 그렉 에이블 최고경영자(CEO)의 데뷔 무대로 주목받았다. 지난 60년 동안 버크셔를 이끌어온 버핏은 객석 1열 맨왼쪽 자리에서 주총을 지켜봤다. 지난해까지 버핏이 주총을 주재할 때와 달리 주총이 열린 CHI 헬스센터에는 빈 자리가 눈에 띄었지만 미국 경제의 축소판으로 여겨지는 버크셔 주총에 대한 주주들의 기대는 여전히 높았다.

뉴욕에서 오마하를 방문한 주주 크리스토퍼 밀러는 "새벽 5시부터 줄을 섰다"며 "버크셔가 여전히 시장을 분석하는 혜얀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주 아만다 베넷은 "에이블은 버핏이 선택한 후계자"라며 "유능하지 않은 사람일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렉 에이블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2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연례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마하(미국)=심재현 특파원

에이블은 주총에서 버핏의 투자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그동안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해온 인공지능(AI) 등 기술주에 대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예고했다. 버핏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며 AI 관련 기술주와 거리를 뒀던 것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에이블은 "단순히 기술을 구매하는 기업에 머물지 않고 기술을 직접 구축하는 기업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버크셔 소유의 북미 최대 철도회사 BNSF와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HE)에 AI를 결합하는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버크셔의 최대 투자 종목인 애플과의 관계도 AI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에이블은 이날 주총에 참석한 팀 쿡 애플 CEO를 소개하면서 "애플이 추진하는 온디바이스 AI 전략은 버크셔의 수많은 B2C 비즈니스와 결합할 수 있는 거대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넘어 애플의 AI 생태계가 버크셔 산하의 소비재 사업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가는 주총 기간 발표된 버크셔의 1분기 실적에도 주목했다. 버크셔의 1분기 영업이익은 113억5000만달러(약 16조7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늘었다. 이 기간 순이익은 101억달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자산운용사 에드워드 존스의 제임스 새너핸 애널리스트는 "주주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리더십 교체기의 실적 공백이었다"며 "에이블은 전례 없는 효율성을 이끌어내며 경영 능력을 수치로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로이터=뉴스1

시장의 시선은 이제 '현인'의 시대를 지나 전문 경영인의 시대로 접어든 버크셔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쌓은 3974억달러(약 590조원)의 현금을 어디에 투자하느냐로 향한다. 투자의 결과는 '에이블 체제'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에이블은 이날 구체적인 투자처를 밝히진 않았지만 일본 최대 손해보험사 토키오 마린과 18억달러(약 2조6000억원) 규모의 전략적 파트너 체결을 공개하는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사했다. 월가 한 투자자는 "애플이라는 거대한 기둥은 유지하면서도 일본 금융· 에너지·기술 등 새로운 기둥을 세워나가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주가 회복도 과제로 꼽힌다. 버크셔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5.9%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가 5%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시장 대비 수익률이 더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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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무 비싸, 투자는 '이때'"…역대급 현금 쌓아둔 버크셔의 지적
/CNBC 캡쳐

"우리가 행동에 나설 기회를 열어줄 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매력적인 기회가 보이지 않을 때 억지로 투자하지 않겠습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후계자인 그렉 에이블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2일(현지시간) 사상 최대 규모의 보유 현금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시장을 예의주시하면서 투자 기회를 살피겠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내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연례 주주총회에서다.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AI) 열풍에 기댄 지금의 증시는 고평가된 상태라는 판단이다. 에이블은 "대규모 투자를 고려할 만큼 저평가된 기업을 찾기 어렵다"며 "적절한 가격이 형성될 경우 지분 일부 또는 전체를 매수할 관심이 있는 기업 후보 목록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버핏도 이날 주총 도중 미 경제매체 CNBC에 출연해 최근 시장 상황에 대해 "투자하기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버핏은 '투자하기 좋은 시기가 언제쯤으로 예상되느냐'는 질문에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을 때"라고 답했다. 시장 가격이 폭락해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질 때가 최고의 투자 기회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버크셔의 이 같은 현금 확보 전략을 방어적 전략으로만 볼 순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자산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형 인수·지분 투자 기회를 선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탐색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버크셔는 과거 위기 국면에서도 대규모 현금을 활용해 시장 평균을 웃도는 수익 기회를 창출했다. 에이블 체제에서도 거래 건수는 줄더라도 한 번의 투자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월가 한 인사는 "버크셔의 전략은 예측 불가능성이 커진 여건에서 실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규모 자본이 속도를 늦추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에이블은 애플에 대해서는 흔들림 없는 신뢰를 유지했다. 버크셔의 애플 보유 지분은 1분기 말 기준 600억달러(약 88조원)로 여전히 최대 보유 종목이다. 전체 투자자산의 40%를 넘겼던 시절에 비해 비중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에이블은 "애플의 펀더멘털에 대한 확신은 버핏 시절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버핏은 CNBC 인터뷰에서 "최근처럼 사람들이 도박 심리에 빠진 때는 없었다"며 투자자들이 과도하게 단기수익에 '베팅'하는 데 대해 쓴소리했다. 버핏은 "당신이 하루짜리 옵션을 사거나 판다면 그것은 투자도, 투기도 아니다"라며 "그건 도박"이라고도 비판했다.

202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미국 옵션 시장과 폴리마켓 등 애플리케이션이 주식·선거·스포츠 예측 등을 플랫폼을 통해 도박처럼 할 수 있게 된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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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워런"…버크셔 주총장 흔든 '가짜 버핏'의 경고
버크셔 해서웨이가 2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워런 버핏 회장의 딥페이크 영상을 시연하고 있다. 실제 버핏은 이날 남색티를 입고 객석 맨앞줄에 앉아 있었다. /오마하(미국)=심재현 특파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연례 주주총회에서 객석에 앉아있다가 발언하고 있다. 버핏은 지난해 은퇴를 선언하고 회장직만 상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오마하(미국) 로이터=뉴스1

2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질의응답 세션이 시작되자 대형 스크린에 정장 차림의 워런 버핏 회장이 나타났다. 버핏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말투로 "오마하에서 온 워런"이라고 인사한 뒤 그렉 에이블 최고경영자(CEO)에게 "내가 95세라 시간도 많고 체리콜라도 마시면서 지내는데 재미로 묻자면 왜 주주들이 버크셔 주식을 장기 보유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냐"고 말했다.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답변에 나선 에이블의 표정은 진지했다. 에이블은 "방금 본 영상은 워런의 목소리나 사진을 한번도 직접 입력하지 않고 온라인에 공개된 데이터만으로 복제해 만든 '딥페이크' 기술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시연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버크셔는 인공지능(AI)이 가져올 보안 위협과 사이버 범죄의 위험성을 주주들에게 직접 경고하기 위해 '가짜 버핏' 영상을 기획했다. 에이블은 "우리가 매일 관리해야 하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가 바로 사이버 리스크"라며 "AI는 악의적인 공격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고 오늘 영상은 그런 위험이 얼마나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무대 아래 객석에서 자신의 가짜 영상을 지켜본 버핏 역시 "방금 본 영상은 정말 무섭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버핏은 2024년 주총 당시에도 AI는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두렵게 하고 다시 램프 속에 넣을 수도 없는 지니"라고 말했다.

주총 현장에서는 버크셔처럼 신뢰가 핵심 자산인 기업의 주총에서조차 딥페이크가 실제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데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버핏으로부터 인생과 투자의 지혜를 얻으려던 주주들에게 가장 큰 경고를 던진 것은 '진짜 버핏'이 아니라 '가짜 버핏'이었던 셈이다.

한 투자자는 "에이블이 주총 데뷔 무대에서 이런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포스트 버핏 시대에도 버크셔의 신뢰와 무결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버크셔는 AI를 통한 업무 효율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사이버 공격과 데이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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