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사상 초유의 잔류…전·현직 의장, 600일간 불편한 동거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05.11 04:00

임기 이후 이사직 유지 선언
78년 관행 깬 '이례적' 선택
워시와 충돌땐 혼란 불가피
정책 불확실성 우려 목소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틀 동안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의장으로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파월 의장은 "5월15일 의장 임기가 끝나더라도 연준 이사로서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DC(미국) 로이터=뉴스1

전세계 금융시장의 이목이 오는 15일(현지시간) 다시 한 번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로 모인다. 지난 8년간 글로벌 금융시장의 키를 쥐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날 의장 임기를 마친다.

시장의 시선은 새로 취임하는 케빈 워시 의장보다 여전히 파월 의장에게 쏠리는 분위기다. 파월 의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2028년 1월31일까지 남은 연준 이사 임기를 채우겠다고 예고하면서다.

연준 의장이 의장 임기를 마치고도 연준 이사로 자리를 지키는 것은 1948년 2월 매리너 에클스 전 의장 이후 78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연준 구조나 환경이 지금과 판이했단 점을 감안하면 파월 의장의 잔류 결정은 사상 초유다. 사실상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군림하는 연준에 '2개의 태양'이 뜨는 셈이다.

연준 회의실의 '2개의 태양'은 정책갈등을 넘어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1·2기를 통틀어 노골적인 금리인하 요구에 맞서온 파월 의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복심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워시 의장 지명자가 통화정책 방향과 시점, 인플레이션 대응방식 등 주요 쟁점에서 다른 시각을 보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자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워싱턴DC(미국) AP=뉴시스

연준 내부 이견이 확대되는 흐름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올해 새로 투표권이 부여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4명 중 3명이 지난달 회의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문구가 연준 성명에 포함되는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정책 기조를 둘러싼 내부 긴장감이 이미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이 지난 4월29일 기자회견에서 '그림자 의장'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시장은 앞으로 연준의 메시지가 일관성을 잃을 가능성도 우려한다. 중앙은행 내부 발언과 신호가 엇갈릴 경우 금리 경로 예측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자산가격 전반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국채 금리와 달러 변동성 확대, 신용시장 스프레드 확대 등 전형적인 정책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의 연준 잔류가 오히려 연준의 독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연준이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순간 정치권의 압박은 더 거세질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불편한 동거'가 연준이 독립적인 통화정책 기구로서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월가 한 인사는 "연준의 권력교체는 끝났지만 연준 내부권력 충돌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워시 의장이 이끌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금리를 내리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높은 재정적자, 대규모 국채 발행, 관세정책에 따른 비용상승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워시 의장조차 금리인하를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이란전쟁 등으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물가 재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금리인하를 발목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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