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의 8년, 팬데믹 대응에 명암 갈렸다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05.11 04:01

유동성 대책으로 공황위기 벗어
2020년엔 '역사적 소방수' 호평
2021년 "일시적인 인플레" 규정
물가대응 시기 놓친 가장 큰 오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겠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반 전세계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아낸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의 2020년 3월 기자회견은 연준의 역량을 전세계에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역사적 장면으로 꼽힌다.

파월은 '제로금리'(0~0.25%)와 무제한 자산매입(QE) 선언으로 실물경제 충격이 전세계 금융시장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냈다. 한순간에 일상이 멈춰버린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연준이 언제든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5주 만에 30% 넘게 무너졌던 S&P500지수를 결국 반등으로 이끌었다. 파월에게 "역사적 소방수"라는 평가가 붙은 순간이다.

팬데믹 당시가 파월의 결단이 가장 빛난 순간이었다면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든 2021년은 가장 큰 오판으로 기록되는 시기다. 경기회복과 공급망 병목이 겹치며 물가가 급등했지만 파월은 그해 8월 잭슨홀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규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월을 비판할 때 자주 쓰는 "너무 늦은 파월"이라는 표현도 이 시기에서 비롯됐다.

연준은 이듬해 3월에야 물가대응을 시작했다. 특히 2022년 6월부터 11월까지 4차례에 걸쳐 각각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한 시기는 실기(失期)를 만회하기 위한 사투의 시간으로 기록된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그래픽=최헌정

같은해 8월 "가계와 기업에 고통이 따르더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파월의 8분짜리 잭슨홀 연설을 두고 시장에선 1980년대 초 20%대 금리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의 재림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연준의 뒤늦은 긴급 긴축 정책에 CPI(소비자물가지수)는 8%대에서 6%대로 둔화했지만 S&P500지수가 20%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의 충격이 컸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 지역은행 위기는 연준 통화정책의 딜레마를 드러낸 사건으로 꼽힌다. 연준은 물가억제를 위한 긴축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긴급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했다. 시장은 연준이 여전히 최종 안전장치로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고금리 기조 자체는 유지될 것이라는 신호로도 받아들였다.

이후 연준은 금리를 더 올리지 않고도 물가를 안정시키는 '연착륙' 시나리오에 베팅했다. 물가는 정점을 지나 둔화했지만 시장은 이제 저물가·저금리 체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분위기다.

월가에선 파월을 영웅으로도, 실기한 의장으로도 단정하지 않는다. 팬데믹 초기 금융시장 붕괴를 막아낸 과감한 돈 풀기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단행한 초고속 긴축, 그리고 은행 위기 국면에서 동시에 펼쳐야 했던 긴축과 구제의 병행까지 파월의 연준은 늘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파월은 때로는 시장의 소방수였고 때로는 시장을 뒤흔든 충격 요인 자체였다. 월가의 한 인사는 "파월은 세계 경제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진 시대에 중앙은행이 감당해야 했던 부담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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