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성과를 두고 미중 양국의 시각은 엇갈렸다. 미국은 중국 시장 확대 등 실무적 성과를 강조한 반면 중국은 향후 전략적 안정의 틀을 짜는 첫걸음으로 규정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표면적 이견은 없었지만 미중 간 인식 차이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백악관은 미중 정상회담 후 성명에서 양국 정상이 미국산 농산물 및 에너지 구매 확대와 펜타닐 원료 차단 등 마약 대응 협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또 두 정상이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고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이 재개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이 미중 간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무대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은 회담 후 두 정상이 "전략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미중 관계 구축이라는 새로운 비전"에 뜻을 모았으며, 양국 관계의 안정적 관리와 경제·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미중 간 발표문의 차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협력 성과를 강조한 반면 중국은 전략적 안정과 장기적 관계 틀 구축 등 원칙과 구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외교 전문가들은 중국이 전략적 안정의 틀을 강조한 건 미국을 이 틀에 묶어 향후 대중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분석했다.
조지타운대학의 중국 전문가인 러시 도시 교수는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안정을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굳히려 한다"면서 앞으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견제 조치는 이 틀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 주석이 정상회담 초반 대만 문제를 거론하면서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충돌하거나 심지어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고 전체 중미 관계를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게 된다"고 경고한 점은 대만 문제를 미중 관계 전체 틀과 연결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DC 소재 컨설팅업체 아시아그룹의 파트너 대니얼 크리튼브링크는 WSJ을 통해 "미국은 중국과의 건설적 안정과 대만에 대한 중국의 요구를 함께 충족시킬 순 없을 것"이라면서 "중국은 미국에 불만을 가질 때마다 대만 문제를 거론하며 미국이 정상 간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회담에서 중국의 높아진 자신감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중국 경제가 부동산 침체와 디플레이션 압박, 인구 감소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지만 시 주석이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회담에 임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과 무역전쟁 중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미국으로부터 휴전을 받아내며 미국을 상대로 한 지렛대를 확인한 터다. 여기에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조치를 무효화한 데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미국의 군사적 부담까지 커지면서 시 주석의 협상력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다.
◆시진핑, 트럼프 면전서 '대만 경고'… 패권경쟁 미묘한 변화
"중국이 9년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지켜본 워싱턴포스트(WP)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밝히는 등 9년 전과 다른 위상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대만문제는 양국관계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이른바 '레드라인'을 밝혔다. 시 주석이 국내용이 아닌 외교무대, 그것도 미국에 이같이 말한 것은 이례적이다. 두 정상이 톈탄(天壇·천단)공원으로 이동할 때 백악관 취재기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입장을 물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과 관련, "훌륭했다"고만 짧게 말했다. 백악관도 14일 오후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중국은 두 정상이 3년간,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건설적 전략안정관계'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쟁을 줄이고 이견을 통제,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개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세계 최강대국(G1)으로 단극질서를 이끌어온 미국으로선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양새란 사실이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란전쟁 중에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가 있어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외신은 분석했다. 미국은 중국이 이란에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열고 핵문제를 포기하도록 설득해주길 기대한다. 미국은 자국의 최대기업 CEO(최고경영자)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보다 많은 미국산 제품과 농산물의 중국 판매를 하고자 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희토류 공급망 등 지렛대(레버리지)를 쥔 데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묶어두려 한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블룸버그통신도 양국 정상회담에서 협상의 지렛대를 쥔 건 시 주석이라고 조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향해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웠지만 시 주석은 흔들리지 않고 대만문제를 강조했다.
중국이 지난 13일 서우두공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을 때부터 '특별대우를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해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한정 중국 부주석이 나오자 "격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9년 전엔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나왔다. 한 부주석은 당시보다 급은 높은 인물이지만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 역할이다.
한편 두 정상이 방문한 톈탄공원은 중국의 역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현지 매체 보도 등을 종합하면 시 주석은 이곳의 핵심시설인 기년전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해 기념사진을 찍고 기년전을 함께 관람했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과 대화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백악관 출입기자단 공유내용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기년전 앞에 서서 회담이 어땠냐는 질문에 "훌륭했다"며 "정말 대단한 장소며 믿기 어렵다. 중국은 아름답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당시 자금성에서 장시간 머물며 공연관람 등을 한 것과 달리 톈탄 방문은 30여분 만에 마무리해 대조를 이뤘다. 그럼에도 중국 지도부가 톈탄을 방문지로 고른 의미는 9년 전 자금성에 비해 작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있다. 자금성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톈탄은 중국식 질서와 안정의 상징이다. 기년전은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던 곳으로 황제의 상징인 용과 관련 상징물도 설치돼 있다.
중국은 톈탄이란 장소의 상징성을 통해 질서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세계질서를 중국이 미국과 함께 주도한다는 자신감도 드러내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