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서 일부 종목 쏠림 우려 속에 외국인투자자가 매도세를 보이는 데 반해 올해 상반기 일본 증시에선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10조엔(약 95조원)을 돌파하며 반기 기준 역대 최대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두터운 AI(인공지능)산업 공급망과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앞세워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인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도쿄증권거래소의 투자자별 매매동향 자료를 인용,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는 올해 초부터 6월 셋째주까지 일본 현물주식을 10조9391억엔어치 순매수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5배 급증한 규모로 지난해 연간 순매수액도 2배 넘어섰다. 또한 아베노믹스에 따른 대규모 금융완화로 증시가 급등한 2013년 상반기 신기록(8조3000억엔)도 뛰어넘는 규모다.
상반기 닛케이지수 상승률은 39%로 미국 S&P500지수(10%)와 유럽 스톡스600지수(8%)를 웃돈다.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로는 AI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투자할 수 있는 폭넓은 산업기반이 꼽힌다. 여기엔 반도체 제조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용 광섬유업체 후지쿠라, 반도체 절연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아지노모토 등이 포함된다. 또 2026년 3월 결산기업을 분석한 결과 전선·네트워크 장비업체 후루카와전기공업, 첨단소재업체 미쓰이금속, 일본 낸드플래시업체 키옥시아홀딩스 등의 외국인 지분율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BofA증권의 아쿠쓰 마사쓰구 일본 수석전략가는 "일본은 AI 하드웨어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갖췄으며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업층도 매우 두텁다"고 짚었다.
일본과 반대로 한국 및 대만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는 올해 상반기 코스피(ETF 제외)에서 149조원어치 넘게 순매도했다. 대만 증시도 6월 초 기준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로 전환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일본은 산업기반이 다양한 데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이어지면서 대안시장으로 부상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싱가포르 헤지펀드 GAO캐피탈의 차우웨이 야크 CEO는 "일본은 시장규모가 훨씬 크고 산업도 다양하다"면서 "한국 증시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 의존한 시장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대만 역시 가권지수에서 TSMC 비중이 40%를 웃돈다. 바클레이스의 아제이 라자드약샤 글로벌리서치 총괄은 "한국은 메모리반도체에,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투자하는 시장이라면 일본은 경제 전반에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인 데다 AI라는 추가 성장동력까지 갖췄다"고 평가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정권의 정치적 안정성과 성장전략에 대한 기대도 외국인 자금유입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후반부터 일본에선 다카이치 총리의 재정확대 정책에 따른 엔화약세와 주가상승에 베팅하는 '다카이치 트레이드'가 확산했다.
다만 기대가 꺾일 경우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이탈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아베노믹스 당시에도 외국인은 누적 20조엔 규모의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지만 성장이 둔화하자 매도로 돌아서며 시장을 압박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GMO의 릭 프리드먼 포트폴리오전략가는 "도쿄증권거래소와 일본 기업들이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중단한다면 외국인투자자들이 다시 이탈할 위험이 있다"며 "지속적인 경영개혁이 일본 증시 상승세를 이어갈 핵심조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