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손실이 밥상 물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인플레 중에서도 폭염에 의한 물가상승 즉 히트플레이션이 현실이 되고있다.
28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동남아 최대 쌀 생산국인 태국에서는 쌀 수출가격이 지난달 넷째 주(6월 25일 기준) 1톤당 490달러로 연초 대비 27.2% 상승했다. 태국은 올해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누적강우량이 평년 대비 60% 줄었다. 태국은 열대기후를 살려 2·3모작을 통해 쌀 생산량을 증대하지만 기상이변의 영향을 받기 쉽다.
인도도 마찬가지다. 6월 강우량이 같은 기간 평균 대비 40% 감소하면서 인도산 쇄미 쌀 품종 가격은 7월 넷째 주(7월 23일 기준) 10개월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미국 농무부는 5월 식품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3.1% 상승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농작물 가격이 이달 들어 7% 상승했고 코코아·커피·밀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은 지난주에 비해 8% 올랐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강타한 대형 산불은 농가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최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지역에서 7억5000만㎡를 태운 산불로 인근 축산 농가들이 피해를 입었다. 인근에는 3000 ㎢가 넘는 농경지 및 축산 농가에서 농부 약 3850명이 생계를 꾸리고 있다. 마드리드 지역 축산인 연합(Ugama) 회장인 라미레스는 AFP통신에 "가축뿐만 아니라 식량, 사료, 기계를 모두 잃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엘니뇨 발생이 예측되는 상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7월에서 9월 사이에 열대 태평양에서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 발생한다고 예보한 상태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올해 하반기 엘니뇨 현상의 강도에 따라 전 세계 식품 원자재 가격이 최대 15.8% 급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엘니뇨는 태평양 중·동부 열대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으로 평균보다 섭씨 2도 상승하면 '슈퍼 엘니뇨', 2.5도 이상 상승하면 '고질라(Godzilla) 엘니뇨'로 불린다. 기록적인 폭염, 홍수, 폭풍우 등 이상 기후를 발생시켜 농업 생산량과 직결되는 기상이변이다.
엘니뇨 현상은 이미 작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맨 그룹의 앨버트 추 천연자원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올해 폭염으로 작물 수확량이 5~12% 감소할 수 있고 쌀과 같은 주요 곡물은 2~8%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전세계 농작물 생산지에서 작물별 파종·성장·수확기 차이에 따라 이번 엘니뇨의 여파는 2028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 농작물 운송에 사용되는 운하와 강물의 수위도 변수다.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딧은 이로 인해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이 14.3% 감소한다면 3420억달러(약 513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고 전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발행한 경제 보고서에서 "연말 엘니뇨 현상의 강도 상승 우려로 코코아 가격이 상승했다"며 "극심한 기상 현상과 더불어 기후 위기가 더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식량 가격은 예상보다 더 크게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ECB는 지난 2024년 121개국의 월별 소비자물가지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후위기로 인해 2035년 연간 식품 물가상승률과 전세계 물가상승률이 각각 3.2%포인트, 1.18%포인트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엘니뇨가 이란 전쟁과 겹쳐 인플레이션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소비자와 기업의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아져 임금 인상 요구를 부추기고 물가 전가 효과를 가속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농작물 공급망이 끊기면 통화정책만으로 공급 충격을 해소할 수 없어서 높은 금리 수준이 고착화될 우려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부 농부들이 이란 전쟁발 에너지 공급망 충격으로 산업용 비료를 다른 제품으로 대체해서 수확량 감소가 예상되는 데 엘니뇨 현상이 겹치면 여파는 더 커질 것"이라며 "이미 많은 식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 소비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또 다른 악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