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기 국채에 대한 매도세가 계속되며 30년물 국채수익률이 19년여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장기채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차입 비용을 늘려 경제에 부담을 주고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30년물 국채수익률은 17일(현지시간) 0.06%(포인트) 가까이 오르며 5.310% 마감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6월12일에 기록한 5.356% 이후 최고 종가다. 30년물 국채수익률은 30거래일 연속 5%를 웃돌고 있다.
이날 10년물 국채수익률도 0.03%포인트 이상 오르며 4.724%를 나타냈다.
최근 장기 국채수익률 상승은 단순히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져서가 아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6~7월 두달간 둔화됐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가격도 이날 배럴당 84.50달러로 마감하며 지난 4월에 기록한 112.95달러보다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경기 약화 신호가 나타난 것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낮추는 요인이다. 지난 7월 신규 고용과 소매판매는 예상과 달리 전월비 감소했다.
이 때문에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2년물 국채수익률은 오는 9월 금리 인상 전망이 낮아지며 지난 7월 말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2년물 국채수익률은 떨어진 반면 30년물 국채수익률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2년물과 30년물의 국채수익률 격차는 1.13%로 확대됐다. 이는 지난 4월 이후 가장 큰 스프레드다.
지금처럼 장기채 수익률이 올라가면서 장단기 국채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지는 현상을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이라고 한다. 베어 스티프닝은 주로 미래에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할 것이란 우려와 국가부채 증가세 때문에 나타난다. 현재 미국 장기채 수익률이 상승하는 핵심 원인도 크게 이 2가지 때문으로 파악된다.
물가지표는 최근 둔화했지만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충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높아졌다는 판단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장기간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노출되는 장기 국채에 대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BMO 캐피털마켓의 미국 금리 전략팀장인 이언 린젠은 "전반적인 경제지표의 흐름이 바뀌었음에도 시장은 국채수익률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낮추려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에는 유가 불안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배런스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으로 WTI와 30년물 국채수익률 사이의 10일 상관계수는 0.85로 나타났다. WTI 가격이 오를 때 30년물 국채수익률도 상승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지난 7월23일만 해도 둘 사이의 상관계수는 거의 제로(0)였다.
이에 대해 스톤X의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담당 금리 팀장인 쉬리야 사마르스는 "유가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란 의미"라고 지적했다. BMO 캐피털마켓의 린젠도 "에너지 부문은 채권시장에 약세를 촉발하기에 충분한 잠재 요인"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증가세를 계속하면서 국채 공급이 늘고 있다는 점도 장기채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투자자들은 지난주에만 신규로 발행된 미국 중장기 국채 1250억달러를 소화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재무부는 지난주 30년물 국채를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금리인 5.216%에 발행해야 했다. 지난주 10년물 국채도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금리에 낙찰됐다.
22V 리서치의 이코노미스트인 제라드 맥도넬은 "국가부채가 많아질수록 채권시장이 소화해야 할 장기채 공급이 늘어난다"며 "이는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투자자들이 장기채에 요구하는 초과 수익률, 즉 기간 프리미엄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재정 불확실성이 커지고 장기채 공급이 늘면 투자자들은 장기채 보유에 따른 리스크에 대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골드만삭스도 현재 장기 국채수익률 상승의 주요 원인은 재정 우려와 국채 공급에 따른 기간 프리미엄 상승이라고 지목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연간 2조달러에 이른다. 국가부채는 이달 말 40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AI(인공지능) 투자를 위해 기술기업들이 차입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장기채 수익률에 상승 압력이 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막대한 규모의 국채 발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술기업들의 회사채까지 장기 자금을 두고 경쟁하면서 장기채 수익률을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채 수익률 상승은 차입 비용을 늘려 경제주체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주식시장으로선 무위험 자산인 국채의 수익률이 올라가면 원금 손실 리스크에 대해 더 높은 기대 수익률을 제공해야 투자 매력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다 기업들의 미래 이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할인률이 높아져 타격을 받는다.
문제는 장기채 수익률의 고공행진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바클레이스의 미국 금리 전략팀장인 안슐 프라단은 "우리는 장기 국채에 대한 매도세가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에 반대해 왔으며 지금도 같은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장기채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려면 △재정 상황이 예상보다 개선되거나 △AI와 관련한 회사채 발행이 둔화되거나 △미국 재무부가 국채 발행 전략을 변경하거나 △경기활동을 보여주는 지표가 지속적으로 약하게 나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