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앤트로픽, 오픈AI 주도로 진행 중이던 미국 AI(인공지능) 규제 기구 설립 작업이 엔비디아의 젠슨황, 메타 마크 저커버그, xAI 일론 머스크 등의 반대로 최근 무산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이날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 젠슨황 최고경영자(CEO)와 저커버그 CEO, 머스크 CEO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AI 규제 기구 설립 작업을 무산시켰다고 보도했다.
앞서 데미스 허사비스 알파벳 수석과학자는 AI 규제·감독기구를 제안했다. 연방정부가 감독하는 표준기구 아래 독립 기술 전문가 위원회가 AI 모델을 심사하고, 운영비는 업계가 대자는 제안을 내놨다. 당초 백악관은 허사비스의 제안에 공감해 AI 기구 설립을 추진했으며, 구글을 운영하는 알파벳과 오픈AI, 앤트로픽이 위원회 구성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젠슨황·저커버그·머스크 등 또다른 AI 기업군의 CEO들이 몇 주에 걸쳐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AI 산업 권력이 구글과 오픈AI, 앤트로픽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또 이들은 허사비스 제안을 따라 AI를 적극 규제하는 것보다 위험 요소만 대응하는 '소극적 대처'가 낫다는 의견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의견을 받아들여 AI 규제 기구 설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AI 규제에 찬성하던 백악관 일부 보좌진 사이에서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트럼프 백악관 내부에서도 AI 규제 찬성파와 반대파가 나뉜다고 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기 백악관 'AI 차르'를 맡았다가 백악관 기술자문위원회 공동 의장으로 자리롤 옮긴 데이비드 색스는 대표적인 AI 규제 반대파다. 그는 AI를 적극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차례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벤처 투자자 출신인 색스는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포함해 AI 기업 지분 다수를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백악관 일부 관계자가 색스가 AI 규제 시도를 차단함으로써 개인적으로 얻을 이익이 있는지를 조사한 사실이 있다고 WSJ는 전했다.
AI 규제 찬성파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이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AI가 금융권 사이버 보안을 무너뜨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와일스 실장과 함께 지난 몇 달 동안 AI 규제에 나서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앤트로픽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제이콥 콕슨이 회사를 떠나며 "내년 말쯤 통제 불능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남긴 이후 AI 업계에서는 AI 발전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속도 조절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AI가 인류에게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됐다.
반면 AI 발전이 빨라질수록 인류는 번영할 것이라는 가속주의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속주의자들은 AI가 인류 통제를 벗어날 것이란 우려는 허황된 것이며, AI로 인류는 한 단계 더 높은 형태의 문명을 구축할 것이라 주장한다. 빅테크 기업들이 AI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규제를 요구하는 것은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비판도 있다.
AI 속도 조절이 맞다고 쳐도 AI 규제와 속도 조절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외교협회(CFR) 코너 마틴 연구원은 지난 15일 CFR에 기고한 글에서 "AI업계에는 발명 가능한 기술이 있다면 결국 누군가는 발명해낼 것이란 숙명론이 존재한다"며 "이를 감안한다면 AI 개발을 잠시 멈추는 정도는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누군가는 개발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에 속도 조절은 무의미할 것이란 지적이다.
마틴 연구원은 "앤트로픽과 오픈AI만 보더라도 두 회사 모두 이를(AI 속도 조절을) 죄수의 딜레마로 여기는 듯하다"며 "어느 쪽이든 상대방이 자신을 앞서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면 스스로 AI 개발 속도를 늦추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