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든, 우리는 가능한 한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We should go as fast as we can irrespective of anybody else")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일(현지시간) CBS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개발 지속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AI 개발에 대한 그의 입장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공개 통화에서 드러났다. 지난 14일 로스앤젤레스 '올인 서밋'에서 황 CEO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연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위험론에 따른 속도조절이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자 황 CEO는 "그런 일은 없게 하겠다"며 화답했다.
황 CEO는 AI 개발 논쟁에서 트럼프의 핵심 우군으로 평가받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4일 하원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AI의 위협을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엔비디아 CEO 젠슨 황과 완전히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답했다.
'AI 속도조절론'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한 AI 개발자의 경고였다. 앤트로픽의 핵심 연구원이었던 제이컵 콕슨은 회사를 떠나며 기업들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AI를 향해 위험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안전 대책이 기술 발전을 따라갈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AI 속도조절'을 공개 제안했다. AI가 다음 세대 AI 개발을 가속하면서 안전성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동의했고, 일론 머스크 xAI CEO도 호응했다. AI 빅테크 수장들의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이들에게 반도체 칩을 공급하는 황 CEO는 '가속론'의 전면에 섰다.
CNBC 등에 따르면 황 CEO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서 기자들과 만나 "AI는 소셜미디어와 다르다"며 "규제해야 할 것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만들어지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다만 안전성에 대해서는 기업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제품이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면 출시를 늦추고 계속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 속도와 안전성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주장을 '잘못된 양자택일'이라고 반박했다. 새로운 법이나 규제가 필요하지 않으며, 안전이 우려되면 각 기업이 스스로 멈춰 바로잡으면 된다는 논리다. 이는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개발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과 부합한다.
황 CEO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해 마련한 백악관 국빈 만찬에도 참석했다. 빅테크 수장들이 미중 정상과 한 자리에 모이면서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CNBC는 황 CEO의 국빈 만찬 참석이 그와 트럼프 대통령의 긴밀해진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평가했다.
황 CEO가 AI 개발 속도조절론에 반대하는 배경에는 엔비디아의 사업적 이해관계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경제매체 배런스는 AI 개발이 늦춰질 경우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인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칩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전했다. AI 개발 경쟁이 이어질수록 대규모 컴퓨팅 자원에 대한 투자가 계속되는 만큼,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속도조절론이 사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3년 대만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황 CEO는 16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AMD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약 1년간 일하며 반도체 설계 경험을 쌓았다. LSI 로직에서도 약 8년간 시스템온칩(SoC) 전략과 관련된 코어웨어(CoreWare)디렉터로도 근무하며 이해도를 높였다. 황 CEO는 30살이던 1993년, LSI 로직에서 만난 크리스 말라초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황 CEO가 이끄는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칩 회사로 출발해 AI 컴퓨팅 기업으로 확장했다. 엔비디아는 2022년 말 챗GPT가 출시되기 전부터 AI 열풍을 뒷받침해왔다.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AI 기업들이 모델을 학습시키고 대규모 작업을 수행하는데 사용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최대 공급처로 부상했다.
엔비디아는 현재 시가총액 5조달러 수준의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다. CNBC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매출은 2021년 170억달러에서 2025년 2150억달러로 급증했다. 엔비디아를 추격하는 중국 기업도 적잖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화웨이는 자체 AI 칩인 '어센드(Ascend)'의 중국 내 수요가 본인들의 생산능력을 웃돌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캄브리콘과 알리바바 등 다른 중국 기업들도 AI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며 중국의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