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좌불안석"…美 중간선거에 달린 '470조 투자청구서'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10.05 12:10

[美 중간선거 D-30]'3500억달러 동상이몽'…거세지는 투자 압박

3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반달리아의 버틀러-반달리아 학생 활동 센터에서 열린 중간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한달 앞두고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를 위해 미국 전역을 순회 중이다. /AFPBBNews=뉴스1

"워싱턴에서 어떤 뉴스가 나올지 매일 출근길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미국 조지아주에 공장을 짓고 있는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4일(현지시간) 기준으로 'D-30'을 맞은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두고 국내기업들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對美) 투자가 '미국 내 일자리 확대와 제조업 부흥'을 부르짖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치적으로 소비되면서다.

11월 선거 결과에 따라 직·간접적 투자 요구의 수위와 형태는 물론, 보조금과 세제지원 등의 정책이 요동칠 전망이다.

공화당 수성vs민주당 탈환, 정책강도 달라질듯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9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미투자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백악관에서 나오는 에너지·제조업 투자 압박은 선거 표심과 맞물려 한층 거칠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한 데 이어 이달 2일에는 "한국이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개발 사업 투자에 합의하지 않으면 2배로 올리겠다"고 압박했다. 대미 투자 프로젝트 발표 이후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를 두고 양국간 이견이 빚어지자 중간선거 표심을 의식해 투자를 사실상 강제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미 정가에서는 경합주 유권자들을 의식해 총 3500억달러(약 470조원)에 달하는 한국의 대규모 투자 이행을 독촉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입장에서 올해 미국 중간선거가 단순히 미 의회 다수당을 가리는 정치일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가 미국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면서 선거결과가 곧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와 관세, 보조금, 공급망 전략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치가 한국 기업의 최대 경영 변수가 된 셈이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지켜낸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산업·통상정책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삼아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한국 기업으로선 미국 현지 생산이 관세를 피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끊임없는 추가 투자 압박에 노출될 위험도 함께 안게 된다.

민주당이 상·하원 중 한 곳이라도 탈환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관세 정책에 견제장치가 마련될 수 있다. 무분별한 관세 부과 권한을 둘러싼 청문회와 감독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의 부담이 완전히 해소되는 건 아니다. 미국 내 제조업 보호와 중국 견제, 핵심 공급망의 미국 내 구축은 민주·공화 양당이 모두 공감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의 방향 자체보다 강도와 집행 방식, 행정부와 의회간 힘의 역학 관계가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 셈법도 복잡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 /사진제공=삼성전자

한국 기업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보조금과 세제지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미국 내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를 집행하면서 반도체법 지원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중간선거 이후 의회 권력 변화에 따라 관련 예산과 집행 방식, 지원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배터리 업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조지아와 테네시 등 미국 곳곳에 생산시설을 짓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미국 중심 공급망 구축의 대가로 막대한 투자비를 부담하고 있다. 미국의 세제 혜택과 정책 지원이 바뀌면 수익성 계산도 달라진다. 자동차와 철강업계에선 관세가 더 직접적인 변수다. 관세가 다시 높아지면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이 낮은 기업일수록 타격이 커진다.

재계 한 인사는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이제 단순한 해외 시장 개척이 아니다"라며 "관세와 보조금,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 됐고 문제는 그 보험료가 계속 치솟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선거 이후 불확실성 돌파할 선택지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양자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뉴시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정당의 승패보다 미국 통상정책의 불확실성 확대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관세와 투자 사이에서 생산거점을 재조정하고 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 11월 미국 중간선거는 '미국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산업과 지역에, 어떤 속도로 투자해야 미국의 정치 지형이 바뀌어도 사업성을 지킬 수 있느냐'를 묻는 선거인 셈이다.

통상 당국과 기업들이 중간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 움직이기보다는 공화·민주 어느 당이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미국 내 생산과 공급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투자 규모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리스크 컨설팅업체 D&A어드바이저리의 장성관 미국전략실장은 "중간선거가 바꾸는 것은 워싱턴의 권력 지도만이 아니다"라며 "그 결과에 따라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470조원 투자 청구서의 조건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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