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가사 분담이 부부의 관계 만족도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청소나 설거지처럼 눈에 보이는 집안일 외에도 가족의 일정을 관리하고 생활을 계획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부부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호주 퀸즐랜드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함께 거주하는 이성 커플 235쌍을 대상으로 가사노동의 분담 방식과 관계의 질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가사노동을 크게 3가지로 구분했다. 청소와 요리, 설거지 등 직접 몸을 움직여 수행하는 '신체적 노동', 장보기 목록 작성과 병원 예약, 가족 일정 관리 등 생각과 계획이 필요한 '인지적 노동', 가족의 감정을 살피고 위로하거나 돌보는 '정서적 노동'이다.
분석 결과 여성은 3가지 가사노동 모두에서 남성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인지적 노동에서 성별 차이가 두드러졌다. 여성은 집안 운영과 가족 일정 조율에 필요한 생각과 계획, 관리 업무를 남성 파트너가 보고한 것보다 약 25% 더 많이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성평등이 진전됐음에도 가사노동의 상당 부분을 여성이 부담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인지적 노동에서 이러한 격차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집안일의 분담뿐 아니라 부부가 서로의 기여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관계의 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신체적·정서적 가사노동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가 클수록 관계의 질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연관성은 여성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반면 장보기 계획이나 가족 일정 관리 등 인지적 노동의 분담에 대한 인식 차이는 남성의 관계 만족도 저하와 관련이 있었다. 가령 한 사람은 자신이 집안일을 충분히 분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집안 운영에 필요한 계획과 조율을 대부분 혼자 책임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같은 집안일을 두고도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 관계의 질과 연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이끈 사라 카운두리스 퀸즐랜드대 심리학과 박사는 "같은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가사 책임의 분담을 매우 다르게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차이가 관계의 질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가사노동에는 신체적인 집안일보다 훨씬 많은 것이 포함된다"며 "생각하고 계획하고 일정을 조율하며 가족의 필요를 예상하고 돌보는 일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인정받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부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집안일뿐 아니라 '인지적·정서적 노동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가사 분담에 대한 인식과 관계의 질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으로, 인식 차이가 관계 만족도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