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헌 주중한국대사가 한중관계를 과거의 틀로 보기보다 변화한 국제환경에 맞춰 전면적이고 복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내년 한중 수교 35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재도약할 수 있도록 평화·혁신·문화 분야의 협력도 강조했다.
노 대사는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학교에서 열린 '한중관계의 미래' 주제 강연에서 "올해는 한중관계의 전면적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내년 수교 35주년을 계기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중국인민대 충양금융연구원과 글로벌리더십학원이 공동 주최한 제21회 대사 강연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한국 대사가 이 행사에 연사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대사는 지난해 11월 경주와 올해 1월 베이징에서 열린 두 차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 간 신뢰가 회복됐다고 평가했다. 이제 양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민생에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사는 미중 전략 경쟁과 공급망 불안 등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기존 경제협력 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노 대사는 "과거의 경제협력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오고 있다"며 "이제는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잘 결합하는 수평적 협력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화·혁신·문화 3개 분야를 이를 위한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평화 분야에서는 최근 신압록강대교 개통에 따른 북중 교류 확대에 기대를 나타내면서 북한의 대화 복귀와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이 필요하단 점을 강조했다. 혁신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실버경제, 녹색 전환 등을 중국과의 협력 대상으로 꼽았다. AI 기술 발전에 따른 위험에 대해서도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화 분야에서는 기존 교류를 넘어 콘텐츠를 공동으로 기획·제작·유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노 대사는 문화의 기원이나 우월성을 놓고 다투기보다 "우리가 공유하는 자산을 가지고 어떻게 함께 협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구축과 공동 투자 펀드 조성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됐다.
한중관계를 바라보는 기존 시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언급도 나왔다. 노 대사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 구도가 한중관계 복원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양국 간 또는 다자 간 관계를 과거의 틀로 규정해서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다"며 "이제는 전면적이고 복합적인 관계에 대한 시각과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