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에 착수하면서 농업 분야의 시장 개방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축산물에 대한 개방에 영향을 미칠 자유무역협정(FTA)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CPTPP 논의가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어서다.
31일 정부에 따르면 농업 분야 시장 개방과 관련한 FTA 협상이 여러 국가와 진행되고 있다. 농수산물을 상품양허 대상에 포함한 협상 가운데 모로코·이집트·아르헨티나·우루과이·메르코수르·멕시코·탄자니아 등 7건은 개시·재개 단계다. 태국·파키스탄 FTA와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협상은 본협상이 진행 중이다.
FTA 상품양허 협상에서는 농수산물을 비롯한 상품의 관세 인하·철폐 등 시장 개방 수준을 정한다. 다만 상품양허 대상에 포함됐다고 모든 농축산물의 관세가 철폐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개방 품목과 수준은 상대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농업계가 특히 민감하게 보는 협상은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축산물 경쟁력이 높은 국가들이 포함돼 있어서다.
메르코수르와의 협상은 2021년 이후 중단됐지만 최근 연내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협상 재개에 대비해 과거 협상 과정에서 오간 내용과 관련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다른 개별 국가와의 협상도 추진된다. 쇠고기 경쟁력이 높은 아르헨티나와의 FTA는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가 진행 중이고 멕시코와는 협상 재개를 협의 중이다.
농산물 생산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인도와는 지난 5월 CEPA 개선 12차 협상을, 파키스탄과는 같은 달 FTA 1차 협상을 진행했다. 주요 농산물 수출국인 태국과도 지난해 9월 7차 협상까지 진행됐다.
정부는 협상 초기 단계에 있는 국가에 대해서도 사전 검토에 나서고 있다. 농식품부는 아직 관련 시장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이집트·모로코와의 협상에 대비해 사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상품 관세를 다루지 않는 협상에서도 농업 분야의 시장 개방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중국과 진행하는 서비스·투자 후속협상이 대표적이다. 중국과는 지난 6월 15차 협상까지 진행됐다.
이 협상에서는 농산물 관세가 아니라 농산물 유통시장 개방이 농업 분야의 주요 쟁점이다. 중국 사업자가 국내에 법인을 설립해 농산물 도매업 등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범위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CPTPP 가입 논의까지 시작되자 농업계가 긴장하는 모양새다. 기존 FTA를 통해 농축산물 시장이 상당 부분 개방된 상황에서 CPTPP 가입까지 추진될 경우 추가적인 시장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농업계 입장에서는 CPTPP와 메르코수르 모두 당장 발등에 떨어진 통상 현안"이라며 "CPTPP에서 추가 개방이 이뤄지면 이를 기준으로 다른 FTA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개방 요구가 이어질 수 있어 개별 협상 이상의 파급효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CPTPP 가입 여부나 농업 분야의 구체적인 영향이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재 CPTPP 가입에 따른 경제적 타당성과 산업별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농업 분야에 미칠 영향도 별도로 살펴보고 있다.
진행 중인 FTA 협상에서도 상대국의 농업 경쟁력과 주요 수출 품목 등을 고려해 민감 품목을 대응 중이다. 농업계와 주요 통상협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민감 농축수산물의 개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협상 상대국에 따라 주목해서 보는 품목은 달라진다"며 "농업 분야는 별도로 농업계 단체들과 간담회를 통해 주요 통상협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