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물량 몰린다" 씨마른 전세, 여기서 더?...보증금 더 오르나

김지영 기자, 배규민 기자
2026.10.24 06:30

[MT리포트] 전셋값 천장 뚫고 어디로(下)

[편집자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과거 고점에 근접했다. 역대 최장기 집값 상승세와 전세 매물 부족을 고려하면 고점 돌파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소진한 뒤 확 불어나는 보증금 부담과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전세의 월세화, 내년 이후 본격화하는 정비사업 이주에 따른 멸실 수요까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임대차시장의 구조를 짚어본다.

입주 줄고 이주 몰린다…정비사업 '18만' 가구 전세 블랙홀

서울 정비사업 연도별 이주 예정물량/그래픽=윤선정

#서울 송파구 가락동 일대.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 이주가 본격화하면서 인근 전월세 시장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현재 이주 중인 삼환가락아파트(648가구)와 가락미륭아파트(435가구)에서만 1000가구가 넘는 주민 이동이 발생하는 가운데 송파구 전세 거래량은 5월과 9월을 제외하고 올해 내내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전세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 재건축 이후 돌아올 집을 기다리며 기존 생활권에 머물려는 이주 수요가 전세시장에 유입되는 모습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도 재건축 이주에 따른 전월세 매물 감소가 관측됐다. 개포주공5단지는 지난 1월 8일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해 5월 7일까지 이주를 마쳤다. 이주 시작 당시 개포동 전세 매물은 1664건, 월세 매물은 1716건이었지만 4월 4일에는 각각 991건, 865건으로 급감했다. 전세 매물의 약 40%, 월세 매물의 약 50% 증발한 것이다. 이주 기간에 임차 수요가 늘어난 데다 기존 매물이 소진되면서 지역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주택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단지의 이주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5월에는 강남구가 송파구를 제치고 가장 많은 전세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재건축·재개발 이주가 서울 전월세 시장의 중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비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이주 단계에 들어서면 기존 주택에 거주하던 가구는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철거와 신축공사를 거쳐 입주가 시작될 때까지는 최소 3년 이상이 필요하다. 기존 생활권에 남으려는 이주민은 그 기간 만큼 인근 세입자와 임대주택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정비사업에 따른 멸실 이주 수요는 향후 5년간 크게 불어날 전망이다.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6~2030년 서울 207개 정비사업의 이주 예정 물량은 총 17만9310가구다. 올해와 내년 각각 2만4844가구, 1만3446가구에 이어 2028년에는 4만5256가구의 이주가 예정돼 있다. 이어 2029년과 2030년에도 3만9102가구, 5만6662가구가 이주할 예정이다. 특히 2028~2030년 물량은 14만1020가구로 전체의 78.7%를 차지한다. 사업 추진과 인허가 상황에 따라 실제 이주 시기는 달라질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대규모 수요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자치구별로는 목동 재건축 단지가 포함된 양천구가 3만1112가구로 가장 많다. 이어 송파구 2만4708가구, 강남구 1만5852가구, 영등포구 1만3395가구 순이다. 정비사업이 밀집한 지역에서 이주 시기가 겹치면 인근 전월세 시장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입주 물량 감소와 정비사업 이주가 맞물리는 2027~2028년을 주목하고 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관리처분인가 단계까지 마친 정비사업장이 상당히 많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만 정비사업에 따른 이주 수요가 3만가구 이상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과소공급 구간에 접어드는 만큼 이주 수요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가장 우려되는 시점은 2028년"이라고 말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대치동과 송파권 등 학군지에 이주 수요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비사업 속도를 일률적으로 늦추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이 지연되면 향후 입주 물량이 줄고 사업비와 금융비용이 늘어 조합원 분담금과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김준형 명지대 교수는 정비사업의 속도조절 보다는 개별 정비사업 현장에 맞는 주거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주민들에게 주거안정 대안을 더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공공이 이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임시 거처와 이주 자금 지원 등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난 시작도 안했다?..."고점 찍고 더 오를 수도" 암울한 전망

전문가 4인이 본 서울 전셋값 전망/그래픽=최헌정

전문가들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과거 고점을 넘어 추가로 오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신규 입주 감소에 월세 전환과 실거주 확대가 겹쳐 전세 공급이 늘기 어려운 가운데 정비사업 이주 수요 증가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른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가 저렴한 전세나 월세·외곽으로 이동하면 주거비 부담이 다른 가격대와 지역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봤다.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전세 물량의 부족을 최근 전셋값 강세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신규 입주 감소와 기존 전세의 월세 전환으로 세입자가 구할 수 있는 전셋집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진단이다.

실제 전월세 매물은 동반 감소 중이다. 22일 부동산 정보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680건으로 연초 대비 10.3% 줄었다. 월세 매물도 같은 기간 2만1364건에서 1만7651건으로 17.4% 감소했다. 송파구의 경우 전세(60.8%↓)와 월세(55.2%↓) 매물이 동시에 반 토막 났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금은 대출이 막히고 금리가 높은데도 물건이 없어 전세와 월세가 함께 오른다"고 설명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과거 저금리 상승기와 달리 지금은 임대차 시장이 월세로 바뀌는 과정에서 전셋값이 오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에는 세입자가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마련하고 집주인은 전세금을 투자나 자금 조달에 활용할 유인이 컸다. 현재는 신규 입주 부족에 기존 전세의 월세 전환까지 겹쳐 전세 매물이 회복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서울 아파트 임대 매물/그래픽=김다나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비사업 이주가 본격화하면 전세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신규 입주 감소와 실거주 의무에 따른 공급 제약에 이주 수요까지 겹치면 전셋값이 과거 고점을 넘어선 뒤에도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주가 몰리는 지역과 새 아파트가 공급되는 지역이 다르다는 점도 부담이다. 학교와 직장 때문에 기존 생활권을 벗어나기 어렵다면 다른 지역에 입주 물량이 있어도 이주 유인이 떨어진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서울의 문제는 단순히 집이 몇 채 부족하냐가 아니라 이주 수요가 발생하는 곳과 새 아파트가 공급되는 곳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전체 입주 물량만으로는 생활권별 전세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금리와 대출 규제는 추가 상승을 제약할 변수로 꼽힌다. 양 위원은 상승 압력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전세대출 규제와 금리 상승이 상승 폭을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송 대표도 세입자의 보증금 부담 한계와 월세 전환을 제약 요인으로 짚었다. 실거주 의무의 한시적 유예 여부도 전세 공급에 영향을 줄 변수로 봤다.

전문가들은 특히 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전세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 세입자가 월세로 전환하거나 경기·인천으로 이동하면서 서울 전셋값 상승세가 둔화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급격한 금리 인상이 없다면 현재의 수급 불균형으로 전셋값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가격 상승이 둔화하더라도 모든 세입자의 부담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윤 위원은 "고액 전세대출 규제와 월세 전환 때문에 상승 압력은 6억원 미만 전세와 월세 쪽으로 분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높은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한 수요가 더 저렴한 집으로 몰리면 해당 가격대의 보증금이나 월세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급이 회복되지 않은 채 수요만 이동하면 고가 전세의 상승세가 잦아들어도 주거비 부담은 다른 가격대와 지역으로 번질 수 있다.

[MT리포트] 전셋값 천장 뚫고 어디로(上)

"당장 2억 어디서 구해요" 전셋값 한방에 쑥...2022년 최고점 눈앞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