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빼고 다 줄였다…회사채 대신 은행 찾는 기업들

김미루 기자
2026.09.21 04:30

[MT리포트]삼박자 맞은 기업금융①

[편집자주] 기업금융을 둘러싼 정부, 기업, 은행의 이해가 모처럼 같은 방향을 본다. 정부는 부동산에 묶인 돈을 기업으로 돌리려 한다. 기업은 치솟은 채권금리를 피해 은행 문을 두드린다. 은행도 가계대출만으론 더 성장하기 어렵다. 생산적 금융의 삼박자가 맞은 시기, 금리 깎기 경쟁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다. 기업을 골라내는 심사력과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력을 키워야 한다. 최근 기업금융 시장과 국내 은행들의 변화를 짚어봤다.
주요 10개 그룹 채권잔액, 9개월 새 11.7조 감소. /그래픽=윤선정 기자

글로벌 국채금리 상승이 회사채 시장까지 번지면서 기업의 자금조달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회사채 조달비용이 비싸지면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은행대출을 찾는 가운데, 기업대출을 늘리려는 은행과 생산적 금융을 추진하는 정부의 이해도 맞물렸다. 기업과 은행, 정부의 '삼박자'가 맞은 셈이다.

18일 코스콤 CHECK에 따르면 금융계열사를 제외한 주요 10개 그룹의 채권 잔액은 지난해 말 131조98억원에서 지난 17일 119조3163억원으로 11조6935억원(8.9%) 감소했다. 삼성만 7501억원 늘었고 나머지 9개 그룹은 모두 줄었다. SK가 4조4782억원으로 가장 크게 감소했다.

전체 회사채 시장도 같은 방향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반회사채 발행액은 25조905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조9268억원(31.5%) 감소했다. 신규 발행액보다 만기도래액이 많아 9조5992억원 순상환으로 돌아섰다.

최근 국고채를 비롯한 채권금리가 가파르게 뛰는 이른바 '금리 발작'이 배경이다.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금리도 함께 올라 기업이 시장에서 직접 돈을 빌리는 비용이 커진다. 기업에게 회사채와 은행대출은 결국 같은 빚이다. 회사채로 빌리는 이자가 은행에서 받는 대출보다 비싸지면 신용도가 좋은 기업도 굳이 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용등급 좋은 대기업들은 금리가 많이 올라도 조달 금리의 문제지 조달을 못하지는 않는다"며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는데 비교해서 좀 더 싸니까 은행 쪽으로 넘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은행 찾고, 은행도 기업 원해…생산적 금융 '삼박자'
4대 금융지주 6대 그룹 신용공여·익스포저 합산/그래픽=윤선정 기자

회사채를 줄이는 동안 금융권과 거래는 확대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한화·롯데 등 6개 그룹에 대한 신용공여·익스포저는 지난해 6월 말 97조139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109조7154억원으로 12조5764억원(12.9%) 늘었다.

투자와 외부조달 수요가 있는 기업에 은행 자금의 상대적인 매력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시장에서 조달금리가 오르는데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보이면 기업도 채권을 발행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며 "그런 상황에 은행들이 생산적 금융을 한다고 대출을 적극적으로 내줬고 은행끼리 금리 경쟁도 치열했다"고 설명했다.

은행도 기업을 원한다. 가계대출 총량관리로 주담대를 계속 늘려 자산을 키우기는 어려워졌다. 정부는 가계·부동산에 몰린 자금을 첨단산업과 기업으로 옮기는 생산적 금융을 주문하고 있다. 5대 금융지주는 올해 기업대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80조 안팎의 대규모 생산적 금융 계획을 세우고 집행 중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밀고 은행이 따라가는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시장까지 등을 밀고 있다. 다만 회사채 금리가 다시 낮아지면 우량기업은 언제든 자본시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은행대출의 매력이 높아진 지금을 단순 대출 확대에 그치지 않고 기업을 발굴하고 평가하는 역량을 키우는 계기로 삼느냐가 기업금융의 다음 승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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