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아니면 아웃"…데이터센터 몸값 올린 청정전력

헬싱키(핀란드)=권다희 기자
2026.10.26 05:40

[AI와 에너지: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
<2>핀란드가 뜨는 이유, 데이터센터 '생태계'
③탄소배출 없고 저렴한 전력원, 데이터센터 경쟁력↑

[편집자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성장동력으로 꼽히지만, 동시에 천문학적인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 수자원 고갈을 야기하며 전 세계적인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AI 경쟁력 확보와 탄소중립은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AI 인프라의 글로벌 최전선인 미국과 핀란드, 싱가포르에서 빅테크와 에너지 기업, 정책 당국과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이유다. 머니투데이는 AI 혁신과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공존하기 위한 해법을 총 5편에 걸쳐 모색해봤다.
핀란드 헬싱키에 위치한 텔리아 데이터센터 외관/사진=권다희 기자

"데이터센터 잠재 고객의 제안요청서(RFP)에는 사용하는 에너지가 반드시 '그린'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탈락하는 겁니다(you are out of the game)."

지난달 15일 핀란드 텔리아 헬싱키 데이터센터에서 만난 카리 마이콜라 텔리아 헬싱키 데이터센터의 데이터센터 솔루션 총괄은 '그린 전력'이 데이터센터의 수주 경쟁을 좌우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하는 그린 전력은 풍력·태양광·수력으로 생산한 재생 전력이다.

"그린 전력, 고객 최우선순위 요구"

북유럽 최대 통신사 중 한 곳인 텔리아는 핀란드의 핵심 데이터센터 사업자이기도 하다. 고객의 서버를 운영할 공간과 전력·냉각 등을 제공하는 데이터센터 코로케이션 사업자다.

2013년부터 데이터센터 사업을 담당해 온 마이콜라 총괄은 약 10년 전만 해도 전력의 친환경성이 고객의 여러 요구사항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우선순위의 맨 위에 있다"고 했다.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코로케이션 사업에서 이러한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경쟁의 필수 조건이 됐다는 설명이다.

EU 기업용 전기요금 비교/그래픽=김다나

이 같은 변화는 핀란드에 기회가 됐다. 그는 데이터센터들이 핀란드로 향하는 주요 이유로 "가격 경쟁력이 있으면서도 풍부한 그린 전력"을 꼽았다. 특히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난 풍력발전이 이러한 여건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그린 전력 확보가 개별 데이터센터의 수주 경쟁을 넘어 국가의 투자 유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텔리아 역시 헬싱키 데이터센터가 운영을 시작한 때부터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해 왔다. 마이콜라 총괄은 "텔리아는 회사 차원에서 그린에너지만 구입한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증명하는 수단은 원산지보증인 'GO(Guarantee of Origin)'다. 특정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전력의 에너지원을 증명하는 인증서를 구매해 사용 전력에 상응하는 재생에너지 속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함께 만난 투오마스 코이톨라 텔리아 헬싱키 데이터센터의 글로벌 영업 총괄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발전원을 지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태양광이나 풍력만을 사용하기 원하면 특정 태양광 발전소나 풍력단지의 원산지보증을 구매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풍력 발전 비중 추이/그래픽=김다나

"데이터센터, 전력과 냉각의 싸움"

재생에너지 조달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자체의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는 기술적 설계도 핀란드 데이터센터 경쟁력의 핵심이다. 2018년 문을 연 텔리아 헬싱키 데이터센터는 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효율과 폐열 회수를 염두에 뒀다. 2023년 봄 열 회수 설비를 가동하면서 서버 냉각과 도시 난방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서버가 내보낸 뜨거운 공기의 열은 데이터홀 내부 공조장치의 열교환기를 거쳐 냉각수로 전달된다. 약 30℃로 데워진 냉각수는 헬렌이 설치·운영하는 대형 히트펌프로 향한다. 히트펌프는 이 열을 회수해 별도로 순환하는 지역난방수를 약 80~85℃로 데운다. 데이터센터 냉각수와 지역난방수는 서로 섞이지 않고 열만 주고받는다. 열을 내주고 약 20℃로 식은 냉각수는 다시 데이터홀의 공조장치로 돌아와 서버를 식힐 공기의 온도를 낮춘다.

냉각 시스템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열 회수를 최우선 냉각 수단으로 활용하고, 추가 냉각이 필요하면 옥상 드라이쿨러로 핀란드의 서늘한 외부 공기와 열을 교환해 냉각수를 식힌다. 전력 소모가 큰 기계식 냉각장치인 칠러는 이들 방식만으로 냉각이 충분하지 않을 때 가동한다. 코이톨라 총괄은 "칠러를 가동해야 하는 시간은 1년에 고작 몇 시간 수준에 불과하다"며 "필요할 때를 대비해 갖춰 두되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사용을 극도로 억제한다"고 말했다.

텔리아 헬싱키 데이터센터 내부. 지역난방망과의 연계로 효율을 높인 냉각 방식이 적용됐다. /사진제공=텔리아

이러한 폐열 회수 구조는 별도 냉각설비의 전력 소비를 줄여 데이터센터의 전력효율지수(PUE)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PUE는 데이터센터 전체 에너지 사용량을 서버 등 IT 장비의 에너지 사용량으로 나눈 값으로, 1에 가까울수록 냉각 등 부대설비에 쓰는 에너지가 적다는 뜻이다. 마이콜라 총괄은 "여름철이라도 온수 수요가 있어 헬렌이 폐열을 계속 흡수해가기 때문에, 열 회수가 없을 때보다 사계절 내내 PUE 값을 훨씬 낮게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급증하는 인공지능(AI) 연산 수요는 데이터센터에 한층 높은 냉각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마이콜라 총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설에서는 일반 서버 랙 170여 개를 수용하는 구역에도 고밀도 AI 서버 랙을 설치하면 약 20개만으로 전력 한도에 이른다. 좁은 공간에 전력 소비와 발열이 집중되면서 공기만으로 열을 제거하기 어려워지고, 액체냉각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마이콜라 총괄은 "AI 부하는 기존의 공기 냉각만으로는 발열을 감당할 수 없어 액체냉각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코이톨라 총괄 역시 "이제 데이터센터는 랙 밀도를 감당할 전력과 냉각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짚었다.

텔리아 헬싱키 데이터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핀란드 직업전문학교 '타이토탈로(Taitotalo)'와 기업 오피스 빌딩가. 평일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형 업무·교육 시설이 인접해 있음에도 별다른 갈등이나 소음·환경 비판 없이 일상적인 공간 조화를 이루고 있다./사진=권다희 기자

설계부터 자원사용·주민 영향 최소화

물 사용량을 줄이는 데도 신경을 썼다. 데이터홀과 히트펌프를 오가는 냉각수는 폐쇄회로 안에서 순환한다. 코이톨라 총괄은 "이곳은 폐쇄회로여서 물도 낭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코이톨라 총괄은 "거대한 화석연료 발전기를 돌리고 냉각탑에 막대한 수돗물을 증발시키는 방식의 데이터센터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지역사회와의 공존 역시 세심한 설계로 풀어냈다. 주택가 인근에 자리한 이 데이터센터는 냉각설비 등을 실내 기술실에 배치해 외부로 퍼지는 소음을 줄였다. 마이콜라 총괄은 "핀란드에서는 인근 주택에 방해를 주지 않도록 데이터센터를 배치하는 기준이 엄격하다"고 했다.

엄격한 규제는 지역사회에서 빚어질 수 있는 데이터센터와의 갈등을 없앴다. 코이톨라 총괄은 "이 시설의 경우 반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건물 주변을 걸어도 소음이 들리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에 데이터센터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본 기획 취재는 한국기자협회와 기후미디어허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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