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 사천시 곤명면에는 새로운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다.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의 '국산콩분말가공센터'다. 지난달 27일 공장에 들어서자 방앗간에 온 듯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분쇄기가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돌았고 잘게 부서진 콩은 고운 분말이 됐다.
바로 옆 '국산콩압착오일가공센터'는 더 분주했다. 압착기 4대가 맞물려 돌며 콩을 짓눌렀다. 노란 콩기름이 가는 줄기로 흘러내렸고 기름이 빠진 대두박은 한쪽에 수북이 쌓였다.
이곳은 수입콩에 밀려 설 자리가 좁아진 국산콩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현장이다. 정부의 논콩재배 장려로 국산콩 생산량은 2020년 8만926톤에서 지난해 15만6145톤으로 5년 새 93% 뛰었다. 이제 늘어난 콩의 소비처를 찾아야 한다. 수입콩이 장악한 시장에서 국산콩이 내세울 무기는 논(Non)-GMO(비유전자변형) 원료다. 식용유에도 GMO(유전자변형) 원료사용 여부를 표시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이를 소비자에게 알릴 기회도 넓어졌다. 다만 원료만으로 시장을 뚫기는 어렵다. 안정적인 가공·유통기반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
◇'㎖당 가치' 높인 국산 콩기름…가격 문턱 낮춰 새 시장에 도전
두 공장은 늘어난 국산콩을 어디에 쓸지 고민한 끝에 나온 첫 결실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국산콩 가공산업화 지원사업'으로 지어져 지난달 15일 준공식을 열었다. 가공공장 1417㎡와 저온창고 3303㎡, 하역창고 583㎡ 등을 갖췄다. 사업에는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3년간 총 191억7000만원이 투입된다. 사업을 맡은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은 저장·선별시설과 압착오일·낫토 제조시설 등을 단계적으로 구축한다. 원료보관부터 가공제품 생산까지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분말공장에서는 서리태 분말과 여러 곡물을 활용한 선식을 만든다. 소비자가 콩을 직접 불리고 삶거나 갈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 일상에서 간편하게 먹도록 한 제품이다.
또다른 주력제품은 국산콩 압착오일이다. 국내 식용유 시장은 1970~1980년대 값싼 대두유가 보급되며 커졌다. 이후 올리브유 등 고급유가 들어오면서 원료와 제조방식을 따지는 시장으로 다변화했다.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은 이 흐름을 타고 '㎖당 가치'를 높인 국산 콩기름으로 새 수요를 겨냥한다.
다만 가격이 걸림돌이다. 콩사랑영농조합법인에 따르면 콩 100톤을 투입해 얻는 압착오일은 9.5~10톤이다. 수입콩보다 비싼 원료를 쓰는 데다 투입한 콩의 일부만 기름으로 얻는 만큼 판매가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국산 원료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을 찾아야 한다.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은 정부의 수매콩을 활용, 원료비 부담을 낮추고 압착오일의 홈쇼핑 판매가격을 220㎖ 1병에 9900원으로 잡았다. 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하되 재구매로 이어지도록 가격문턱을 낮춘다는 전략이다. 기름을 짜고 남은 대두박의 활용방안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물에서도 추가 수익을 확보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제품의 가격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다.
김기홍 콩사랑영농조합법인 식품가공사업부장은 "처음부터 높은 가격으로는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기 어렵다"며 "원가에 가공비와 적정이윤을 더해 소비자가 반복해서 살 수 있는 가격으로 판매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3000개 농가의 콩, 분말·낫토로…생산에서 소비까지 잇는다
가공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원료공급 기반도 중요하다.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은 전국 약 3000개 농가와 계약재배하며 작황에 따라 연간 8000~1만톤의 콩을 취급한다. 확보한 콩은 식품업체에 납품하거나 자체 가공제품의 원료로 활용한다.
각지에서 확보한 콩은 사천으로 모인다. 기존에는 선별장에서 색과 무게 등에 따라 분류한 뒤 식품업체에 원료로 납품하거나 소포장해 판매했다. 자체 가공제품 생산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가는 시도다. 원료공급에 더해 제품개발과 판매까지 맡아 국산콩의 새로운 소비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체매입한 콩뿐 아니라 정부의 비축콩도 보관·관리한다. 수확기에 들어온 콩을 저장했다가 수요처가 필요로 할 때 공급하는 역할이다.
가공제품 생산을 늘리려면 원료를 일정한 품질로 보관하고 꾸준히 공급할 기반도 필요하다. 저장과 선별은 농가의 수확물을 가공업체가 쓰는 원료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자체 가공시설을 더하면 원료납품과 제품판매를 병행할 수 있다. 기존 유통기반을 활용해 국산콩의 수요처를 넓히려는 것이다.
김 부장은 "농가와 함께 생산한 원료를 직접 가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려는 것"이라며 "어떤 원료를 썼는지 알리고 제품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발효식품으로도 영역을 넓힌다. 올해는 낫토 제조·가공시설과 저온창고 등을 조성하고 내년에는 낫토 가공시설과 부대시설을 추가로 갖출 계획이다. 압착오일과 분말에 낫토까지 더해 국산콩이 식탁에 오르는 경로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 접점을 확보하는 일이다.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은 온라인 판매와 홈쇼핑 방송을 준비하는 한편 유통업체 입점과 PB(자체상표)제품 생산도 협의 중이다. 아직 낯선 국산콩 압착오일을 소비자가 쉽게 선택하도록 조리활용법을 알리는 작업도 병행한다.
정혜련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국산콩 생산이 늘어난 만큼 안정적인 소비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가공센터를 계기로 국산콩 가공제품 개발과 판로확대를 촉진해 생산부터 가공·소비까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