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사이에서 '데스노트'로 불리던 부장의 수첩이 알고 보니 팀원들을 배려하기 위한 기록이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발표할 때 긴장하는 직원부터 질문을 망설이는 막내까지 수첩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살핀 메모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직장인 커뮤니티 '리멤버'에는 지난 9일 '회사에서 데스노트라고 불리던 부장님 수첩의 정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에 따르면 그가 속한 팀의 부장은 회의 때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PC 대신 작은 수첩을 꺼냈다. A씨나 막내가 발언할 때는 물론 과장이 점심으로 중국 음식을 먹자고 제안할 때도 무언가를 꼼꼼히 적었다.
무엇을 쓰는지 몰랐던 직원들은 수첩에 '데스노트'라는 별명을 붙였다. "야 너 아까 부장님 수첩에 적혔어", "망했다. 이직 준비해라" 같은 농담도 주고받았다.
수첩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부장이 회의 도중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운 날이었다. 펼쳐진 수첩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A씨는 그 아래 적힌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발표할 때 긴장하면 말이 빨라짐. 중간에 끊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팀원들의 이름 옆에도 비슷한 메모가 있었다.
"○○ 대리 요즘 자신감 떨어져 있음. 공개적으로 칭찬해 줄 것", "막내 질문하려다 자꾸 포기함. 먼저 물어봐 줄 것" 등이었다. 과장 이름 옆에는 "매운 거 못 먹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팀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자신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적어둔 수첩이었던 셈이다.
자리로 돌아온 부장에게 A씨는 "죄송합니다. 일부러 본 건 아닌데 제 이름이 보였다"며 사과했다. 부장은 "봤어요?"라고 묻더니 A씨의 발표 습관에 관한 메모를 가리켰다. 이어 "그럼 하나만 지워줘요. 요즘은 많이 좋아졌으니까"라며 웃었다.
그날 오후에는 과장의 식성에 관한 메모가 화제가 됐다. 과장이 "부장님 저 매운 거 잘 먹습니다"라고 하자 부장은 수첩을 한참 뒤적이더니 "작년 회식 때 떡볶이 먹고 우유 두 개 마셨잖아"라고 답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세요?"라는 과장의 물음에 부장은 무심한 듯 "기억 못 하니까 적어 놓는 거지"라고 말했다.
A씨는 "다들 웃었는데 저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며 "어쩌면 같이 일하는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좋은 직장인인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진정한 리더십이 보인다", "얼마나 팀을 아끼는지 느껴지는 따뜻한 상사" 등의 반응을 보였다.
A씨에 따르면 이후에도 부장은 회의가 시작되면 수첩을 펼쳤다. 누군가 "또 데스노트 시작하셨네요"라고 농담하자 부장은 "걱정 마, 아직 아무도 안 죽었어"라고 받아쳤다.
A씨는 "이상하게도 이 수첩에 이름이 올라가는 건 조금 괜찮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