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주 기사로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남기는 선행매매 수법으로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회계사와 기자 등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 다만 부당이득 규모와 범행 가담 정도는 다퉈보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박종열)는 21일 오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모씨 등 7명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앞서 총책으로 지목된 회계사 한씨와 최모씨 등 기자 5명은 공모해 2020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특징주 기사 보도 1800여건을 이용한 선행매매 수법으로 약 85억5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과정에서 특징주 종목을 발굴·선정하거나 기사 초안 작성 과정에 관여한 일반 투자자도 함께 기소됐다.
이날 한씨 측은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 한씨 변호인은 "잘못을 인정하고 크게 (혐의를) 다투진 않는다"며 다만 양형과 부당이득액 산정 두 가지 측면에서는 다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기자 출신 최씨와 권모씨 등도 공소청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대체로 인정했다. 다만 범행한 가담한 정도를 고려하면 정범의 지위에 있지 않거나, 공소청이 산정한 부당이득액이 과도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기자 출신의 이모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씨 변호인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며 "다만 기소 당시 부정청탁과 배임수재 혐의만 적용됐다"고 말했다. 기자 안모씨도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수사에 협조한 점과 범행 가담 정도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부당이득 산정 기준과 방식에 대한 추가 의견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기존 보도 하나하나에 대해 주가에 영향을 준 요인을 모두 고려할 경우 재판이 지연될 우려가 있는 데다, 이익 실현을 하지 않아도 변동된 시세의 최고가를 기준으로 부당이득이 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미공개정보 이용에 따른 부당이득 산정 방법이 이 사건에 부합하는 것 같다"며 "'손실을 입었다', '이런 부분에서만 이득을 얻었다' 등의 주장은 무의미해질 수 있으니 관련해 의견을 내달라"고 말했다.
앞서 공소청은 지난 7월 한씨 일당을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수·증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주로 거래량이 적거나 주가변동성이 높은 중소형주와 테마주를 중심으로 종목을 정해 특징주 기사를 이용한 선행매매 범행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특징주'라는 명칭을 이용해 기사 초안을 작성하고 이를 현직 경제지 기자들에게 전달해 배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사 배포 직전 '준비'(레디)를 뜻하는 은어 'ㄹㄷ'를 주고받았던 것으로도 파악됐다. 범행은 금융감독원이 압수수색에 나서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범행에 연루된 경제지 기자들은 '기사 1건당 30만원을 주겠다'는 조건에 섭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각각 챙긴 금액은 적게는 2800만원, 많게는 1억5000만원에 달했다.
한씨의 경우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받게 되자 소유 중이던 부동산을 매도해 법원의 추징보전명령을 무력화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다만 공소청은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 등 은닉자산을 추적해 추징보전 또는 동결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