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계열사 물량 지원 등이 없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자산 배분 역량 강화 등 퇴직연금 시장 전략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
2일 퇴직연금 적립금 공시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올해 3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DC(확정기여형) 적립금은 전 분기 대비 918억원 증가한 8조387억원이다. 3분기 업권 내 한국투자증권의 DC형 시장점유율은 5% 이상 상승했다. 글로벌 증시 조정 여파로 대다수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정체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 같은 자금 유입의 배경으로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인식 변화와 시장의 구조적 재편을 꼽았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신규 DC형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2015년 40세에서 지난해 36세로 낮아졌다. 만기 시 일시금이 아닌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11%에서 85%로 급증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근로자의 은퇴 준비 시점이 앞당겨지면서 퇴직연금을 단순 적립식 퇴직금이 아닌 장기 운용·관리 대상 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라며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머물던 가입자들이 실질 수익률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춘 금융사로 계좌를 옮기는 '피플무브(People Move)'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DC형과 IRP(개인형퇴직연금) 적립금 합산액은 18조5160억원으로, 지난해 말(12조7868억원) 대비 44.8% 증가했다. 이는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앞서 올해 상반기에만 5조 6600억원의 퇴직연금 자산이 유입되며 반기 만에 지난해 연간 전체 유입액(4조9300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가 시행된 2024년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실물 이전을 통해 유입된 적립금 규모만 2조518억원에 달한다.
가입자 유입을 이끈 핵심 요인으로는 글로벌 자산 배분 경쟁력과 장기 수익률 관리 역량이다.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공시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디폴트옵션 적극투자형 BF1' 포트폴리오는 3년 누적 수익률 123.34%를 기록하며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 상품 중 1위를 차지했다.
이 상품은 계열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MySuper알아서성장형' 펀드를 중심으로 운용한다. 미국 대형 성장주와 국내 국고채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 방어에 효과적인 금, 원자재, 물가연동채권, 부동산 등 대체 자산에 폭넓게 분산 투자한다.
체계적인 온오프라인 고객 관리 인프라도 한국투자증권의 강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퇴직연금 법인 전담 조직과 전국 영업점 PB(프라이빗뱅커), 본사 연금 관리센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트리플 케어(Triple-Care)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고도화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업계 최초로 연금 계좌 내 ETF(상장지수펀드)·리츠·상장 인프라펀드와 현금성 자산의 잔고 변동을 매매 체결 기준으로 즉시 반영하는 '총 연금 자산 실시간 평가' 기능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ETF 매매에 따른 현금 잔고 변동이 결제일에 반영됐으나, 개편 이후에는 변동성 장세에서도 거래 직후 전체 연금 자산과 수익률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는 MTS 연금 서비스를 전면 개편했다.
최종진 한국투자증권 연금혁신본부장은 "이번 실적은 시장 침체 국면에서도 한국투자증권의 체계적인 자산관리 전문성과 MTS 인프라를 신뢰한 가입자들의 주도적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DC는 근로자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노후 자산인 만큼, 정교한 자산 배분과 입체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연금 자산을 형성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