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전산시스템 오류와 관련된 환자안전사고 보고가 2년 새 6배 가까이 급증했다. 일부 국립대병원은 EMR(전자의무기록)을 새로 바꿀 때 진료 예약을 최대 70%까지 줄였고, 개통 뒤 전산오류 민원과 환자안전사고 보고가 늘어난 곳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인증하는 EMR에는 정작 오류나 장애를 신고받는 창구조차 없고, 인증 이후 사후 점검도 사실상 공백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갑)이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한국보건의료정보원, 보건복지부, 국립대병원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에 '전산장애'로 보고된 환자안전사고는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총 65건이었다.
연도별로는 2021년 8건, 2022년 9건, 2023년 4건에서 2024년 15건, 지난해 23건으로 2년 만에 6배 가까이 늘었다. 이 중 34건은 '위해 없음', 29건은 '근접오류'였고, 2건은 '경증' 피해로 이어졌다. 의료기관이 자발적으로 보고한 건수여서 실제 사고는 더 많을 수 있다.
보고된 주요 사례를 보면 전산 오류가 환자 안전을 직접 위협했다. 페니실린 계열 항생제 알레르기 정보가 등록된 환자에게 구조가 유사한 항생제가 처방됐으나, 전산 오류로 부작용 주의 알림창이 뜨지 않았다. 환자는 퇴원 당일 약을 먹은 뒤 흉통과 호흡곤란이 와 응급센터를 다시 찾았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8년 전 이식 후 남겨 둔 자가 조혈모세포가 보관 기간이 지나 폐기됐는데, 이 정보가 의료진 전산에 연동되지 않아 재발 환자가 입원과 전처치까지 마쳤다가 치료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밖에 소방 방송 설정 오류로 심정지 응급호출(CPR) 방송이 전달되지 않거나, 처방전 출력 차질, 영상(PACS) 전송 누락 등 진료 직결 사고가 보고됐다.
일부 국립대병원이 EMR을 새로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진료 차질이 이어졌다. 강원대병원은 2024년 1월 새 시스템을 개통한 뒤 초기 약 1주간 일부 외래환자의 진료 예약 일정을 조정했고, 전산오류 민원은 개통 전 3개월 1건에서 개통 후 3개월 3건으로 늘었다. 앞서 2022년 EMR을 개통한 전남대병원과 화순전남대병원도 외래 예약을 한시적으로 줄였고, 외래환자는 전월보다 각각 35.7%, 28.9% 감소했다(전남대병원은 연초와 겹친 시기). 2020년 EMR을 연 충북대병원은 개통 직후 6일간 진료 예약을 30~70% 줄였고, 개통 전 3개월 4건이던 환자안전사고 보고는 개통 후 3개월 14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정부의 EMR 인증제도에는 이러한 현장의 오류를 걸러낼 장치가 없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EMR 인증제도 내에 인증 제품의 오류·장애 신고를 접수·관리하는 별도 체계는 없음"이라고 답했다. 인증 이후 점검은 기능 변경 신고 등에 따른 '변경심사'가 전부였으며, 그마저도 2021년 이후 3건에 그쳤고 인증이 취소된 사례는 없었다. 총 59개의 EMR 인증기준 중 약물알레르기 점검 등 환자안전 관련 기준이 18개에 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할 통로는 전무한 셈이다.
정부의 보고 체계에도 빈틈이 있다. 복지부는 "'의료정보시스템 오류'는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 유형에 해당하지 않아 관련 보고 건은 없음"이라고 답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2021년 이후 발령한 관련 환자안전 주의경보도 3건에 불과했다.
허 의원은 "알레르기 경고창이 먹통이 돼 환자가 응급실을 다시 찾고, 일부 국립대병원은 시스템을 바꾸면서 진료 예약을 최대 70%까지 줄이는 일이 벌어지는데도, 정부가 인증한 EMR 시스템엔 오류를 신고할 창구조차 없다"며 "인증 마크만 찍어주고 사후 관리는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EMR 인증 제품의 상시 오류·장애 신고 체계를 구축하고, 환자안전 관련 기능은 인증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며 "나아가 중대한 사고 발생 시 전산 오류가 근본 원인인지 명확히 확인하고 집계하도록 의무보고 체계를 대수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