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버티나"했는데...제주서 해녀된 미국인, 80세 회장님도 '인정'

이재윤 기자
2026.08.26 08:49

한국 해녀자격 취득한 유일한 외국인 '카일리 젠터'..."여기서 죽을 것"

미국 CNN이 한국 '해녀 자격'을 보유한 외국인 카일리 젠터(36)를 소개했다. 미국 뉴욕 출신인 젠터는 제주에 정착해 해녀들과 물질을 하며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사진=CNN

미국 CNN이 한국 '해녀 자격'을 보유한 외국인 카일리 젠터(36)를 소개했다. 미국 뉴욕 출신인 젠터는 제주에 정착해 해녀들과 물질을 하며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젠터는 제주 서쪽 끝에 위치한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젠터는 2026년 기준 국내에서 해녀 자격을 보유한 유일한 외국인으로 알려졌다.

뉴욕주 출신인 젠터가 처음부터 제주 해녀를 꿈꿨던 건 아니다. 대학 시절 유럽에서 유학한 그는 졸업 후 아시아에서 영어를 가르칠 일자리를 찾았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한 만큼 당초 일본행을 생각했지만, 숙소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한국의 영어강사 채용 공고를 보고 2012년 경남 진주로 향했다.

4년 뒤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제주에서 더 흥미롭고 급여도 높은 일자리를 발견했다. 젠터는 "K팝 콘서트를 자주 보러 다녔기 때문에 서울에 살면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도 "제주에 더 흥미롭고 보수도 좋은 기회가 있어 '잠깐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고 말했다.

제주에 정착한 젠터는 자신이 진행하던 영어 프로그램을 위해 해녀 문화를 배우려고 해녀학교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실제 해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전환점은 2024년에 찾아왔다. 고령화로 젊은 해녀가 부족해진 영락리에서 새로운 해녀를 모집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스쿠버다이버인 젠터의 한국인 남편이 아내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지원 의사를 밝혔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한 달 뒤 김창식 영락리 어촌계장이 마음을 바꿔 젠터에게 면접 기회를 줬다. 김 계장은 당시 젠터에게 "해녀는 정말 힘든 일이다. 원하지 않는다면 부담 갖지 말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했다.

젠터는 결국 2024년 1월부터 영락리 해녀들과 본격적인 물질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을 해녀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8명의 베테랑 해녀들은 생소한 '카일리'라는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그를 "헤이(Hey)"라고 부르거나 '미국 꼬마'라고 불렀다. 젠터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에 나가며 신뢰를 쌓았다. 해녀들은 점차 '카일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 카일리라는 이름도 정확히 부르게 됐다. 64년 경력의 홍복녀(80) 영락리 해녀회장은 "다이빙은 우리 한국 사람이나 제주 사람보다 더 잘한다. 정말 마음에 든다"고 평가했다. 홍 회장은 젠터를 자신의 '딸'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젠터는 자신이 진짜 공동체의 일원이 됐다고 느낀 순간도 소개했다.

어느 날 물질을 하던 홍 회장이 소라가 가득 담긴 망을 물 밖으로 꺼내는 데 어려움을 겪자 다른 사람 대신 "카일리, 카일리"라고 외치며 도움을 청했다는 것이다. 젠터는 "도움이 필요할 때 저를 가장 먼저 찾았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며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마을 사람들이 저를 받아들일 만큼 열린 마음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CNN은 이 과정에서 해녀 공동체가 단순한 직장 동료 이상의 관계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해녀들은 함께 바다에 들어가 서로의 상태를 살피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서로를 구조한다. 김 계장은 "세 명이 바다에 들어갔다면 세 명이 함께 나와야 한다"며 "각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며 함께 물질하는 공동체 생활"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주 해녀는 심각한 고령화와 기후변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제주 해녀박물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현역 해녀는 2371명으로, 이 가운데 63%가 70세 이상이다. 39세 이하 해녀는 30명으로 전체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친다.

바다 환경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CNN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영락리 주변 바다에서 해삼을 하루 100㎏ 이상 잡기도 했지만 올해는 모두 합쳐 해삼 10마리밖에 잡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 계장은 "높아진 수온 때문에 해조류가 많이 사라졌다"며 "소라가 먹을 해조류가 없어지고 바닷물이 너무 따뜻해지면서 소라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 회장 역시 "다음 세대 해녀들이 계속 물질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그렇게 오래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잡을 것이 없어 젊은 해녀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젠터 역시 물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는 않는다. 해녀들이 쉬는 8~9월 비수기에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반려동물 호텔에서 개를 산책시키고 고양이와 토끼 등을 돌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동료 해녀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해녀의 삶도 알리고 있다. 젠터가 특히 바로잡고 싶은 것은 '해녀가 곧 사라질 마지막 세대'라는 인식이다.

그는 "사람들은 '해녀는 마지막 세대이고 곧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아니다. 젊은 해녀들이 아직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은 제 평생의 약속"이라며 "저는 이 마을에서 살 것이고 이 마을에서 죽을 것이다. 그럴 준비가 돼 있다면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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