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국화 문양 표석을 부수는 모습의 소련군 동상을 세우자 일본이 강하게 반발했다. 국화는 일본의 상징 꽃이다.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영유권을 다투는 남쿠릴열도를 방문한 데 이어 동상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러·일 관계가 악화 양상이다.
7일 현지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4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에서 제2차 세계대전 대일 전승 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공개된 조형물은 소련군이 일본의 상징인 국화 문장 표석을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부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기념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제안으로 건립됐으며 높이는 15m로 알려졌다. 국화 문장이 새겨진 돌은 과거 사할린에 있던 러·일 표지석을 본뜬 것으로, '대일본제국 경계(境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일본 정부는 강력히 항의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5일 X(옛 트위터)에 "국화 문양은 일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며 "이를 파괴하는 모습을 표현한 기념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적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러시아 측에 설치 중단과 철거를 강력히 요구했다"며 "앞으로도 강력히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도 같은 날 입장문에서 "일본 국민의 감정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이같은 동상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건설적이지 않다"고 발표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현재까지 러시아 측이 일본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의 반발을 일축했다. 러시아 국영 방송 RT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6일 "기념비를 철거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변경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념비를 철거하라는 일본의 요구는 "태양에게 빛을 내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니콜라이 오프시옌코 대통령실 인도주의 담당 부실장은 국화 문장이 "단순히 (일본) 황실의 상징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제막식은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날 다음 날에 진행됐다. 러시아는 매년 9월 3일을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승리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로 기념한다. NHK는 중국과 북한 관계자들도 4일 제막식에 참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