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에서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 심리가 흔들리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AI 관련 주식을 대거 청산한 데다 주말 사이 미국 AI 펀드 '바라(VARA)'가 강제 청산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헤지펀드발 급락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졌다.
SK하이닉스, 샌디스크 등 반도체주에 베팅한 미국계 헤지펀드의 손실과 강제 매도로 지난 7월 코스피가 급락했던 것처럼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만 굵직한 기업들의 3분기 호실적이 드러나면 불안한 투심을 안정시킬 수 있다.
AI주 팔아치운 헤지펀드
골드만삭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헤지펀드들이 지난 8일부터 5거래일 연속 '골드만삭스 글로벌 AI 바스켓'을 순매도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AI 바스켓은 반도체·데이터센터·클라우드·전력 인프라 등 골드만삭스가 추적하는 약 100개의 대표적인 AI 관련 핵심 종목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다.
헤지펀드들의 순매도 규모는 최근 1년 중 두 번째로 컸다. 특히 새로운 공매도보다 기존 장기 매수 포지션의 청산이 압도적이었다. AI 주가의 하락에 새로 베팅하기보다 그동안 AI 상승에 걸었던 매수를 정리했다는 의미다. 빠져나온 돈은 헬스케어와 필수소비재 같은 '방어주'로 이동했다. 한 펀드가 위험을 줄이기 위해 관련 주식을 팔면 주가가 하락하고 또 다른 펀드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매도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실제 지난주 뉴욕증시는 AI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코어위브에 대한 우려로 휘청거렸다. 코어위브가 그래픽처리장치(GPU) 임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막대한 부채를 조달하면서 빚을 제대로 상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지난 16일 12% 하락했다. 같은날 S&P500은 1.1%, 다우존스는 0.3% 하락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은 2.1% 급락해 지난 6월 4.6% 내린 이후 최악의 주간을 마무리했다. AI 및 반도체 관련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주에만 11.41% 급락했다.
VARA 청산설에 아센브레너 사태 재연될라
여기에 소셜미디어에서는 VARA가 손실을 견디지 못해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는 '청산설'이 돌면서 투심 악화에 부채질을 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VARA는 123개 종목, 401억달러(약 53조5856억원)어치 보통주와 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평가액이 가장 큰 보유 종목은 블룸에너지와 네비우스, 코어위브 등이었다. 이번주 AI 매도세의 진원지로 꼽히는 곳들이다.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인 CNBC 해설자 짐 크레이머는 17일(현지시간) 엑스(X)에 "헤지펀드 청산 사태를 처리하고 월요일에 새 출발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이 글은 바라 청산 소문과 맞물려 빠르게 확산됐다.
투자자들은 지난 7월 미국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A)'의 붕괴가 재연될까 우려하고 있다. 오픈AI 연구원 출신 레오폴드 아센브리너가 운용하던 SA는 원금의 최대 4배까지 빚을 내(레버리지) 반도체 등 AI 인프라 종목을 사고 소프트웨어 종목을 공매도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반도체주가 무너지자 경쟁 헤지펀드들이 그의 보유 목록을 파악해 집중 공매도했다. 빚에 몰린 SA는 공개 주식 전부를 켄 그리핀의 헤지펀드 시타델에 헐값으로 넘겼다.
시장은 '출렁'…월가는 "펀더멘털 굳건"
SA 사태는 7월 한 달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코스피가 20% 넘게 폭락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달 들어서도 코스피가 7000선에서 5000선까지 20% 넘게 폭락하면서 7월 폭락장과 유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도 매도를 거드는 요소다. 다음 달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투자자들은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워지면 위험자산을 먼저 줄이게 된다. 미국과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 재개 가능성과 그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도 금리 상승 부담을 키웠다. 금리가 오르면 코어위브 같은 데이터센터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져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반도체 기업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월가에선 본질적인 실적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21일, 한국시간 22일 새벽 IBM·테슬라·메타 등의 실적 발표가 예정됐다.
탈 리아니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분석가는 코어위브에 대해서도 긍정적 시각을 폈다. 그는 코어위브의 과거 실적이 신뢰를 준다며 "대규모로 능동형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경쟁 우위이고 위험 요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