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1일. 대만 이란현 신마역 인근을 지나던 대만철도 6432호 열차가 과속으로 탈선해 전복됐다. 승무원 3명 등 탑승자 366명 중 18명이 사망하고 267명이 다쳤다. 대만 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된 사고다.
6432호 열차는 이날 오후 4시49분쯤 신마역 승강장 앞 곡선 구간을 통과하던 중 선로를 이탈했다. 궤도를 벗어난 열차 8량이 모두 전복되면서 차량 곳곳이 심하게 파손됐고, 승객들은 뒤엉킨 객차 안에 갇혔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맨 앞쪽 열차인 8호 차에서 나왔다. 해당 객차는 전복 과정에서 알파벳 'W'자 형태로 심하게 찌그러져 피해가 컸다.
사망자 18명 중 15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이 중 6명은 8호 차 내부에서 발견됐다. 사상자는 부상을 입은 미국인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만인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시 2호 차에 타고 있던 한 여성은 "사고 직전 갑자기 열차 속도가 빨라지고 차량이 심하게 흔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승객은 "상당수의 승객이 잠을 자고 있어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열차 문제 알고도 그대로 출발…안전장치 껐는데 관제소 몰랐다
사고가 난 열차는 일본 JR 토카이의 자회사인 일본차량제조가 제작한 최고 시속 150㎞의 고속철 '푸유마(Puyuma) 열차였다. 대만 철도국(TRA)은 2013년부터 타이베이와 이란, 화롄 등 동부 지역을 연결하는 노선에 이 열차를 투입했다.
사고 열차의 차령은 6년 정도로 상태가 좋은 편이었고, 2017년 점검을 받은 바 있었다.
열차는 이날 오후 2시 50분 슈린역을 출발해 타이둥으로 향했다. 사고 전부터 열차 이상이 보고됐지만 그대로 출발했고, 약 50분 만에 열차의 핵심 부품인 주 공기압축기(컴프레셔)에 문제가 발생해 열차의 동력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기관사는 "열차의 동력이 부족하다", "압력이 낮다"고 지속해서 차량 이상을 호소하며 정비 지원을 요청했다.
열차는 결함으로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등 정상적인 운행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란역에도 약 15분 늦게 도착했다.
역에서 임시 조치를 받은 뒤 운행을 재개했지만, 고장의 근본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란역을 출발한 뒤에도 동력 부족과 관련한 경고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운행에 차질이 빚어지자 기관사는 오작동을 일으키는 장치를 제어하는 과정에서 과속을 감지해 열차 속도를 자동으로 제한하는 핵심 안전장치인 ATP(열차 자동 방호장치)를 꺼버렸다.
기관사가 ATP를 해제하면 관제소에 경고 신호가 가야 하지만, 열차 제작사가 배선 설계를 잘못한 탓에 당시 관제소에는 경고 신호가 울리지 않았다.
당시 기관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제실과 무전을 주고받고 있었고, 사고 약 3분 전인 오후 4시 46분쯤 관제실은 화롄역에서 다른 열차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문제 상황 속 15분 지연을 만회하고 화롄역까지 운행을 이어가야 했던 기관사는 신마역 급커브 구간에서 감속하지 못해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탈선 3초 전 브레이크 실패…맨 앞차 으스러졌다
사고 현장인 신마역 인근은 곡선 반경이 약 300m에 불과한 급커브 구간이었다. 이곳의 제한 속도는 시속 75㎞였지만, 사고 당시 열차는 시속 141㎞로 달렸다. 제한 속도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빠른 속도였다.
기관사는 탈선하기 불과 3초 전에야 비상 브레이크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이미 열차는 급커브 구간에 고속으로 진입한 뒤였고,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커브를 돌던 열차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선로를 이탈하며 전복됐다. 맨 앞의 8호 차는 인근 승강장 벽을 들이받고 으스러졌다. 짧은 순간에 벌어진 사고는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기관사는 머리, 가슴 등에 타박상과 열상을 입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사고 다음 날인 22일 머리에 붕대를 감고 휠체어를 탄 상태로 검찰에 인계돼 12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대만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보석금 50만 대만달러(한화 약 2000만원)와 통신 및 거주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석방을 명령했다. 기관사는 보석금을 납부한 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억울함 호소한 기관사… "전방주시 소홀·과속이 사고 원인" 실형 선고
기관사는 재판 과정에서 "열차 고장을 상사에 계속 보고했으며, 차량 결함과 철도청의 부실한 정비 문화가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또 "열차에 동력 이상이 있었고 속도계의 눈금과 실제 열차 속도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였다"며 "계기판 속도가 시속 82~83㎞로 표시돼 시속 140㎞로 달리고 있는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만 검찰과 정부 조사단의 블랙박스 분석 결과 계기판은 정상 작동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만 행정원 국가철도조사위원회(TTSB)가 열차의 블랙박스(TCMS·열차제어모니터링시스템)를 정밀 분석한 결과, 운행 당시 기관실의 디지털 계기판과 블랙박스에 기록된 속도는 일치했다.
재판부는 기관사 주장대로 속도계가 고장 났다고 하더라도 열차의 진동, 소음과 창밖 풍경 등을 통해 과속 상태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블랙박스 기록도 기관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기관사는 사고 직전까지 열차의 출력을 조절하는 전력 레버를 최고 단계로 유지하고 있었다. 급커브 진입 직전까지 감속을 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열차의 일부 부품 고장과 열차 제작사의 설계 실수로 기관사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운행한 정황은 인정된다"고 인정했다.
다만 "관제실의 허가 없이 ATP를 임의로 끄고,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전방 주시를 소홀히 했으며, 제한 속도 두 배에 달하는 과속을 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열차 도입 당시 원격 경보 시스템 테스트를 소홀히 한 대만철도국 전 국장 등 관리자 2명도 함께 기소됐지만, 이들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기관사는 항소·상고했지만, 2023년 3월 대만 최고법원(대법원)이 기관사의 상고를 최종 기각하며 원심판결을 확정하면서 사고 발생 약 4년 5개월 만에 기관사에 대한 형사 재판이 마무리됐다.
기관사는 지난 7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확정판결 기준으로 약 3년 4개월 만이다. 대만 법상 형기 절반 이상을 채우고 모범적인 수감 생활을 할 경우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