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지지세가 짙던 텍사스에서 수십년 만에 민주당 상원의원과 주지사가 동시에 당선됐다. 이민 정책 피로감이 누적된 데 더해 중요도가 고물가·에너지 가격 등 민생 이슈로 이동하면서 국경 지역 표심이 민주당으로 이탈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행정부 이민 정책에도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4일(현지시간) 텍사스트리뷴에 따르면 엘파소·캐머런 등 텍사스의 멕시코 접경지역인 16개 카운티 중 12곳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이 같은 표심 변화에 힘입어 민주당의 제임스 탈라리코가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민주당 지나 히노호사도 주 최초의 라틴계 여성 주지사에 올랐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는 접경지역 10곳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들 가운데 9곳이 탈라리코 당선인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AP통신에 따르면 탈라리코 당선인은 국경지역에서 약 45%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 지지세는 특히 리오그란데 밸리 일대에서 크게 확대됐다. 리오그란데 밸리가 포함된 텍사스 제15선거구에서는 라틴 그래미 수상 가수인 민주당 소속 바비 풀리도 후보가 공화당 현역 모니카 데라크루스 하원의원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투표율 상승도 두드러진다. 16개 카운티의 투표율은 2022년 중간선거 대비 8%포인트 상승했다. 이 지역은 라틴계 인구 비중이 높아 2024년 대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폐쇄와 불법 이민자 추방 공약에 호응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민 단속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집권 공화당에 대한 불만이 투표 참여 확대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민 단속 후 건설 노동자 부족으로 주택 개발 사업이 지연된 캐머런 카운티에서도 민주당 지지가 늘었다.
내륙 농업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캔자스주 시워드 카운티와 피니 카운티에서는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30%포인트 이상 차이로 승리했던 지역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 상원 후보 애덤 해밀턴을 선택했다. 쇠고기·유제품 산업이 발달한 이들 지역은 이민자 노동력 의존도가 높아 단속 강화에 따른 인력난과 식품 가격 상승 우려가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상·하원 장악' 민주당, ICE 겨냥할 듯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민심 이반이 나타나며 트럼프 행정부 이민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관세국경보호청(CBP)의 추방 정책에 적극 협력해 온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재선에 실패했다. 히노호사 당선인은 이민 정책에 대한 법 집행 기관의 책임을 언급하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해왔다.
민주당은 의회 다수당 지위를 바탕으로 ICE 등을 상대로 대대적인 감독 청문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ICE 요원들의 인종 프로파일링, 과도한 무력 사용, 총격 사건, 무당체포 등에 대한 책임 규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화당 주도 의회에서 이미 2029회계연도까지 ICE 예산을 승인한 만큼 실질적인 견제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당은 ICE 요원 감독 강화와 마스크 착용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연방 법안을 다시 추진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 정책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JD 밴스 부통령은 이날 "불법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더 집중하는 등 단속 우선순위를 변경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협력 가능"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선 부담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 정책을 완화할 유인은 적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토 연구소의 데이비드 비어 이민 분석가는 "현 행정부 하에서 이민 단속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재선 부담이 사라진 만큼 오히려 기존 정책을 더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