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를 달군 중간선거 훈풍이 단 하루 만에 사라지며 나스닥 지수가 조정장에 진입했다.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으로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기술주를 중심으로 대규모 매도세가 확산했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미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지수는 전일 대비 5.5% 급락한 2만4315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6일 기록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 대비 12%가량 추락한 것으로 기술적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 지수가 최근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하면 조정장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한다.
대형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지수는 6.4% 급락하며 하루 새 시가총액이 사상 최대 규모인 2조3000억달러(약 3121조원) 증발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는 12.2% 폭락하며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3월 16일(15.9%) 이후 약 6년7개월 만에 일일 기준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지난 6월22일 기록한 올해 최고치 대비 38.4% 추락했다.
기술주 급락은 뉴욕증시 전체에도 영향을 줬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3.44% 떨어졌다. S&P500지수는 4.36% 추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위협한 2025년 4월 해방기념일 이후 최대 낙폭이다.
AI 열풍의 최대 수혜주인 엔비디아는 9% 넘게 떨어졌고, AMD와 마이크론은 각각 17% 안팎 급락했다. 데이터센터 운영업체와 전력·설비 공급업체까지 매도세에 휩쓸리며 S&P500지수의 11개 업종이 모두 하락세를 나타냈다.
데이터센터 규제 공포 현실화
민주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면서 AI 산업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와 규제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특히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발이 커진 상황에서 신규 시설 건설과 전력·용수 공급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반도체와 관련 인프라 기업들의 성장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블룸버그는 이날 급락장에 대해 "중간선거 종료 후 투자자들 사이에서 전면적인 불안감이 확산하기까지 하루가 더 걸린 셈"이라며 "이날 많은 유권자가 데이터센터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반도체 제조업체와 반도체 공급업체의 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제 강화 우려가 심화한 것"이라고 전했다.
웰스파고의 오성 권 수석 주식전략가는 "데이터센터가 가장 많이 들어선 텍사스주에서 데이터센터에 반대하는 규제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지나 이노호사 텍사스 주지사 당선인은 주민 보호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데이터센터 개발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기업 마진 축소 우려에 기계적 투매까지
가뜩이나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던 터에 규제 강화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경우 관련 기업들의 매출과 수익성은 크게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스틴 버그너 가벨리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메모리 기업이든 데이터센터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재 기업이든 AI 공급망 전반에 걸쳐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책정과 높은 마진이 형성돼 있었다"며 "현재 시장은 데이터센터 구축 기간이 더 길어질 것으로 반영한다. 이는 공급망의 수급 긴장을 완화하고 기업들의 마진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스템에 따른 기계적 매도도 낙폭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주가 하락으로 손실이 커지자 옵션 거래자와 시스템 기반 헤지펀드들이 포지션을 정리하면서 매도세가 추가로 확대됐다. 차입금을 활용해 반도체 관련 상품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강제적인 포지션 청산도 하락 압력을 높였다. 시장의 불안 심리를 보여주는 변동성지수(VIX)는 이날 장중 28.09까지 오르며 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월가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거래팀 관계자는 "기술주 매도세가 얼마나 더 깊어질지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의 장기적인 AI 투자 심리가 다시 급격하게 위축되는 분위기"라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