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한 장이 남겨졌다. 그 악보를 누군가는 ‘해석’해야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기에 여전히 잊히지 않은 20년 세월의 흔적을 잇는 ‘연결’의 문제가 등장했다.
내년 사망 20주기를 맞는 고 김광석이 남긴 신곡 악보, 이 악보를 완벽하게 그리고 싶었던 동료·후배 뮤지션, 그리고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연결에 주목한 SK텔레콤이 하나가 돼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김광석의 악보에 대중이 노랫말을 붙이고, 동료·후배 뮤지션들이 노래하고 편곡하는 식으로 완성되는 ‘김광석 신곡’ 작업의 형태는 연결 자체가 흥미롭다. 김광석의 노래로 ‘연결의 힘’을 제시했던 SK텔레콤은 그의 미발표작을 이 같은 형태로 두 번째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일 ‘연결의 신곡발표’ 제작발표회에선 박학기, 심현보, 성시경, 정재일 등이 참여해 못다 이룬 김광석의 꿈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며 곡의 제작 배경 등을 소개했다.
“처음엔 안타까운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부러운 가수로 남아있어요.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은 가수가 있을까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고객에 맞춘 음악이 아닌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한 진짜 이야기를 듣는 이 가슴 한켠에 깊숙이 던졌더라고요. 이 프로젝트는 그 이야기를 이제 대중에게 맡기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노래 하나로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걸 찾아보자고 얘기하는 거예요.”
어릴때부터 ‘절친’이었던 박학기의 말이다. 김광석을 잘 아는 박학기가 총 감독을 맡은 이 프로젝트에서 성시경은 노래를, 정재일은 편곡과 연주를, 심현보는 대중이 준 가사를 다듬는 역할을 각각 맡는다.
이날 발표회에서 선보인 정재일이 임시 편곡한 곡조와 성시경의 임시 보컬을 들어보니, 김광석 특유의 아련한 정서를 떠올리는 선율이 코끝을 스쳤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의 2탄 같은 피아노 반주에 ‘다다다~’하며 의미없이 던지지만 아날로그 감성이 흠뻑 묻어있는 보컬이 김광석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듯했다.
성시경은 “악보만 보면 중간에 박자도 바뀌고 여백이 많아 우리가 채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며 “선배가 안계셔서 물어볼 순 없지만, 무엇을 해도 예뻐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변화되는 과정에서 ‘김광석 느낌이 안난다’는 말이 나올까 겁난다”며 “좋은 작품을 위해 따뜻하고 정성껏 부르겠다”고 강조했다.
10대 때부터 ‘천재’로 불린 정재일은 이 신곡에 피아노 반주를 얹혀 세련된 편곡을 추구했다. 그는 “선배의 이미지는 통기타로 수렴되기 쉬운데, 코드 중심의 기타 연주에서 좀 더 확장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가사가 무엇이냐에 따라 편곡은 수시로 바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피아노와 기타 두 가지 버전도 고려 중”이라고 했다.
김광석의 ‘미완성 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사. ‘연결’의 시작은 김광석이지만, 끝은 대중이라는 점에서 가사 내용에 따라 연결의 색깔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8일 문을 여는 ‘연결의 신곡발표’ 홈페이지에선 대중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사에 참여할 수 있다. 전곡 작사, 한 줄 작사, 부분 작사 등의 방식으로 참여해 작사 멘토인 심현보의 최종 검수를 거친다.
심현보는 “선배의 가사는 시적이면서 깊이있고 일상과 동떨어져있지 않다는데 매력이 있다”며 “미사여구로 치장한 글이 감동을 주지 못할 때도 있고, 일상의 한 문장이 가슴을 칠 때도 있는데, 그런 작은 감동의 글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나름의 심사기준을 밝혔다.
가사의 중요성은 참여 뮤지션 4명이 공통으로 내뱉은 김광석 신곡의 본질이기도 했다. 성시경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가사로 노래하기는 힘들다”며 “정성껏 온 힘을 바쳐 노래할 수 있도록 좋은 가사 많이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완성된 곡은 오는 10월 말쯤 아이리버의 음악문화 공간 ‘스트라디움’ 쇼케이스에서 신곡으로 발표된다. 참가 뮤지션들은 신곡 수익 중 저작권료를 제외한 전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참가 뮤지션들에게 김광석, 또는 김광석의 곡으로 본 연결의 의미를 물었더니, 박학기는 ‘우연의 개입’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우리 뮤지션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 방식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그쳤을 뿐이죠. 하지만 이 작업은 다른 차원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해요. 처음 멜로디에서 여러 우연이 개입되면서 형태가 계속 달라지니까요. 어디서 해보지 못했던 특별하고 희귀한 작업을 세대를 막론하고 이어가는 게 아닐까요?”
옆에 있던 성시경은 좀 더 솔직하고 정서적인 언어로 연결의 의미를 해석했다.
“‘제주도의 푸른 밤’ 같은 노래 리메이크할 때 시류에 편승하느냐란 비판도 들었는데, 저도 가수이기 전에 어떤 노래의 팬이거든요. 김광석 선배가 써놓은 곡이 있다면 한번 부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잖아요. 팬으로서 그냥 기분좋고 신나는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단 한번도 고 김광석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바빠서 못보는 선배 뮤지션이지, 돌아가신 뮤지션으로 여기지 않거든요. 그게 연결의 숨은 뜻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