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과 화이트. 두 색깔이 어우러진 긴 조끼 모양의 코트. 언뜻 보면 여느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옷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코트 뒷면을 들여다보니 싹둑 잘려있다. 종일 앉아있는 이들을 위해 코트 뒤를 과감하게 잘라낸 것. 코트가 구겨지고 엉덩이에 배겨 불편하게 앉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옷은 연세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우즈’(Project OOZE)팀의 작품이다.
휠체어에 항상 앉아있어야 하는 장애인 친구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번엔 지퍼나 단추를 없애고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 소재로 여민 부분을 해결했다. 손이 불편한 이들을 배려한 조치다.
장애인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장애인만을 위한 옷은 아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유니버셜 패션’(Universal Fashion)이다.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가 1970년 처음 사용한 ‘유니버셜 디자인’의 개념을 패션에 적용했다. 나이·성별·크기·신체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더 간편하게 즐길 수 있고 평등하게 선택할 수 있는 패션을 추구한다.
“장애인이 입는 옷이라고 해서 세련미를 무시할 순 없죠. 작은 부자재나 소재의 변화만으로도 예쁘고, 또 모두를 위한 옷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세대학교 테크노아트학부 문화디자인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고윤아(22)씨는 유니버셜 패션을 이렇게 소개했다. 시작은 유엔 해비타트와 롯데백화점이 공동 주최한 ‘샤롯데 피스디자이너’ 공모전. 문화예술을 통해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집,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과 동기 5명이 뭉쳤다. 권소정(20), 김용식(21), 최민기(21), 김세진(21)씨가 그들이다.
권씨는 “‘평화’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지만,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분을 없애는 것도 평화의 하나”라고 콘셉트를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홍익대학교 섬유미술 패션디자인과 학생 손영준(21)씨와 김은아(21)씨를 디자이너로 섭외했다.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의류 사업 ‘페일 터콰이즈’를 운영 중인 박린준 디자이너(25)도 합류했다. 제작 과정 중에 아이디어나 조언을 줄 수 있는 ‘파트너’로서 장애인 3명도 섭외했다.
지난해 10월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 프로젝트 우즈가 5개월여간 제작한 옷은 티셔츠 3종, 원피스 1종, 셔츠 3종, 후드티 1종, 바지 2종, 치마 1종, 코트 3종과 가방이다.
바지는 고무줄을 이용했다. 권씨는 “고무줄 바지라고 하면 운동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즘 유행하는 와이드 팬츠(통 넓은 바지) 스타일을 살렸다”며 “기능성 소재를 사용한 티셔츠도 너무 편한 운동복처럼 보이지 않게 밑단 처리를 특히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셔츠는 일반 면 소재보다 가벼운 ‘쿠션’ 소재를 사용해 제작했다. 왜소증을 지닌 파트너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무겁지 않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장애인의 경우) 옷이 달라붙어 몸 체형이 그대로 드러나는 데 부담을 느끼시더라고요. 쿠션 소재의 경우 훨씬 신축성이 있고 잘 달라붙지 않아 덜 부담스럽죠. 일반인에게도 격식을 차리면서 활동성을 높여주는 옷이라고 생각해요.” (권소정)
토트백 손잡이 부근에는 하얀색의 ‘야광패치’로 포인트를 줬다. 낮에 빛을 받을수록 밤에 빛난다. 밤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을 생각해 제작했다.
“프랑스 A&K 클래식스(A&K Classics)라는 유니버셜 패션 회사가 흥미로웠어요. 휠체어를 탄 사람도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이 화보를 찍더라고요. ‘장애인 의류’라고 하면 편견이 있잖아요. 그런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곧 ‘평화와 발전’ 아닐까요?” (고윤아)
프로젝트 우즈의 목적도 이런 인식 개선이다. 권씨는 “우리나라는 유니버셜 패션에 대한 논문은 많은데 실제로 옮긴 사례는 없었다”며 “장애인 기관 등에도 피드백을 많이 받아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 저희 자료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우즈’(ooze)의 뜻은 ‘스며들다’이다. 모든 사람의 일상에 스며드는 옷을 만든다는 의미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옷에 몸을 맞추는 문화, ‘44·55·66’이란 크기에 자신을 가두는 사회를 거부한다. 대신 ‘편리함’과 ‘심미성’이라는 옷의 본질에 집중했다.
이들은 25일부터 3월 2일까지 일주일간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에서 전시회를 연다. 제목은 ‘우주를 열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