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릇에 눌어붙은 감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곶감을 시장에서 사다가 성분 분석을 해 봤죠. 타닌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릇에 남은 자국에서는 타닌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 거에요. 대체 이게 뭘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죠."
2006년 경주 황남동 건물 유적지에서 나온 그릇 안에 담긴 주황빛 유기물을 연구하던 유혜선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관. 그는 설마 하는 마음에 '황칠'을 구해다 성분분석을 했다. "유레카!" 결과는 일치했다. 삼국사기 등 기록에 남아있을 뿐, 유물로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던 황칠 사용 역사를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황칠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황칠나무의 수액을 갑옷에 발라 쨍한 황금빛으로 만들었다는 마법의 도료다. 고려 후반기까지만 해도 비싼 교역품이었지만, 중국 황실이 조선에 사용을 금지하면서 기록만이 남아있었다. 눌어붙은 감이 될 뻔했던 접시 속 자국은 이렇게 추리와 분석을 통해 아시아가 사랑한 마법의 도료, 황칠임이 알려졌다.
이렇게 수십만 점의 유물이 품은 다양한 사연들이 속살거리는 곳,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1976년 두 사람으로 시작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전담 연구 인원만 30여 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CT, 적외선 촬영 등이 도입되는 등 기술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낡은 문화재에 숨결을 불어넣다
2일 찾아간 국립중앙박물관 1층 보존과학실은 들어가는 과정이 첩보 영화 속 국가 기밀 시설을 뚫는 과정처럼 어려웠다. 박물관 직원도 출입이 제한된 수장고 옆이기 때문. 보존과학부 소속 직원만 통과가 가능한 커다란 철제문을 지나니 끝이 보이지 않는 백색의 복도가 눈앞에 길게 펼쳐졌다.
복도에 있는 20여 개 작업실의 방문에는 직물·금속·토기·서화·벽화·목재·목칠기 등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노크한 뒤 방문을 여니 흰 가운을 입은 학예사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학예사들은 붓과 집게 등으로 손상된 유물들을 복원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2011년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된 백제 의자왕 때의 말 갑옷을 보수하던 박수진 연구원은 "가죽에 옻칠해 만든 말 갑옷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비늘 형태로 가죽 조각을 이어붙인 갑옷인데 해지거나 낡은 부분을 보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909년 대한제국 제실박물관 시절 사들인 목제조아미타여래좌상, 1970년대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 등 수장고에 들어가 있던 유물들이 보존과학부 사람들의 손 아래에서 재탄생하고 있었다.
30cm 앞에서는 가짜 티가 나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 걸려있는 고구려 벽화편 '쌍용총'. 멀리서 보면 완벽한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말 얼굴이 그려진 중간 부분이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위·아래 두 파편은 진품인 것이 명확하지만, 가운데 끼어있는 파편은 가짜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화재 보존 기술이 아직 부족해서 이 정도밖에 복원이 안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보존과학부 사람들은 다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일부러 그렇게 그린 거에요. 완전히 똑같이 복원해서 그 부분이 진품처럼 여겨지면 안 돼요. 티가 나게 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보수 규범이랍니다."
왜 가짜 티가 나게 수리를 해야할까. 완벽한 복원은 복제에 가깝기 때문에 문화재를 보존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유 학예연구관은 "30cm 앞에서는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하고, 1.5m 앞에서는 가짜라는 티가 나지 않는 수준을 복원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존과학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작업이 '미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복원을 한다고 말했다. 보수 규범 제 1원칙인, '가역적 방법(원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방법)'을 언제나 마음 속에 되새긴다는 것. 앞으로 개발될 더 훌륭한 복원 기술을 위해 가능성을 남겨두겠다는 의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8일부터 2달 동안 보존과학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보존과학, 우리 문화재를 지키다'를 연다. 유 학예연구관은 "40년 동안 우리 문화재를 지켜온 과정을 전시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드릴 예정이니 많이 찾아달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