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2억8천~13억…17억…"17억…더 없습니까?"

김지훈 기자
2016.03.10 10:46

천경자 '정원', K옥션 봄 경매 '역대 최고가'…낙찰률 80% 이상, 경매시장 청신호

9일 K옥션의 신사동 경매장에서 열린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서 천경자 화백의 채색화 '정원'이 경매 시작가 12억6000만원에 선보였다. '정원'은 20여차례 경합 끝에 17억원에 팔려 역대 천 화백 작품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사진=김지훈 기자 lhshy@mt.co.kr

"15억!"

"15억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

"더 없습니까? 아, 지금 15억 2000만원 나왔습니다."

K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경매인 봄경매가 진행 중인 지난 9일 오후 6시 서울 신사동 경매장.

12억6000만원으로 시작한 천경자 '정원'은 2000만원씩 빠르게 입찰가가 올라갔다. 15억원 쯤에서 마무리되는 듯하던 경합은 정적을 깨고 다시 이어졌다. 거의 두 명의 현장 입찰자 간 대결 구도였다. 가격이 16억원을 넘자 경매장 곳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최종 낙찰가는 17억원. 20회 가량 이어진 결과였다.

7년 만에 천 화백 작품의 최고가 기록이 나왔다. 기존 천 화백의 최고가 작품은 2009년 K옥션에서 팔린 '초원Ⅱ'로 낙찰가는 12억원이었다.

"천경자(1924~2015년) 화백 작품이 사상 최고가를 달성한 것은 현장에서 빚어진 거센 경합에 힘입은 것이다." 현장을 지키던 이상규 K옥션 대표의 평가다.

◇'정원' 9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가격 48% 급등

'정원'은 2007년 9월 K옥션 가을경매에 출품되어 11억5000만원에 낙찰된 매물과 같은 작품이다. 9년 남짓한 시간 동안 동일 작품 가격이 약 48% 급등했다. '정원'은 이번 봄경매에서 낙찰된 작품 가운데 최고가다.

천경자 화백의 '정원' ./사진제공=K옥션

K옥션 관계자는 '정원'에 대해 "좋은 작품들은 가격 상승의 여지가 있는 데다 지난해 국내 미술 시장 경매 규모도 커져 소장자를 설득해 재출품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매 시작전 추정가 상단으로 제시한 20억원에는 이르지 못했다. K옥션의 이 대표는 "경매에서 '5'또는 '0' 등 상징적 숫자에 대한 심리적 벽이 존재한다" 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은 12억6000만원에 시작해, 13~16억원의 벽을 잇따라 뚫고 17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좋은 작품에 대한 구매욕이 한 몫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정원'을 둘러싼 열기에 주목했다. 그는 "천 화백의 작품은 그동안 가격 폭등의 대상이라기보다 높은 가격대를 꾸준히 유지하던 작품군에 속했다"며 "천 화백 작품이 17억원 수준까지 올랐다는 것은 올해 미술시장에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짚었다.

김 이사장은 "시장이 천 화백 작품의 매물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강하게 인식한 것이 가격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원'은 천 화백의 1962년 작 채색화다. 기존 경매시장 주류를 이루는 작품들이 유화인 것과 달리 종이에 안료를 활용해 그린 작품이다. 이 대표는 '정원'에 대해 "광물안료 등을 채색 등 기법이 가미된 작품으로, 꽃, 여인과 같은 천 화백 작품의 매력적인 소재들이 한 화면에 담긴 작품"이라고 했다.

김환기의 '창공을 날으는 새'. /사진제공=K옥션

◇봄경매 낙찰률 80% 넘어서…소장 희망자, 뜨거운 구매욕

K옥션 봄경매의 낙찰률은 81%로, 낙찰총액은 86억6500만원 수준이다. 낙찰총액은 경매 전 제시된 추정가를 밑돌았지만, 올해 첫 경매에서 고무적인 성과가 나왔다는 평가다. K옥션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낙찰총액은 추정가를 밑도는 편"이라며 "전체 낙찰률이 80%를 넘어선 것은 좋은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본다"고 했다.

봄경매에서 김환기(1913~1974년)의 '창공을 날으는 새'는 12억원에 낙찰됐다. '창공을 날으는 새'는 1958년 제작된 파리시대(1956~1959)의 대표작으로 달을 배경으로 푸르른 무한 공간을 날아가고 있는 새를 표현한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의 서예인 '문산자지'는 1억2500만원에 거래됐다. 문산자지는 추사의 제주도 귀양시절 작품으로, 서예에 있어 글자 하나하나보다 전체 공간의 개념을 중시해 쓰기 시작한 서체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최근 천 화백과 이우환 화백 일부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제기되며 미술시장에 불안감이 형성됐다. 천 화백의 차녀로 알려진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학과교수는 과거 홍역을 겪었던 천 화백 작품인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과거 시장에 나온 이 화백의 일부 작품도 위작 의혹을 받으면서 경찰의 검증 대상이 됐다.

K옥션 관계자는 봄경매에 대해 "위작 시비와 별개의 문제로 좋은 작품에 대한 경합이 뜨거웠던 것"이라고 했다.

K옥션 봄경매에서 1억2500만원에 낙찰된 추사 김정희의 '문산자지'. /사진제공=K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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