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만2755명과 잠자리한 이 ‘배우’…나르시시스트의 전형

김고금평 기자
2016.03.26 03:10

[따끈따끈 새책] '옆집의 나르시시스트'…곳곳에 깔린 '괴물'과 그 '질병'에 대한 이야기

미국 공화당 경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자기애’의 화신이다. 자신이 소유하거나 관련 있는 모든 것이 ‘트럼프’라는 이름으로 과시되기 때문. 트럼프 모기지, 트럼프 레스토랑, 트럼프 대학교…. 이 고유명사 앞에서 그의 막말은 합리화되고, 모독은 신성화된다.

인기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는 생방송 TV 무대에서 몸을 어루만지며 트워킹(twerking, 엉덩이춤)을 앞세운다. 이 어린 여가수는 선정적인 몸짓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듯하다. 더 많이 못 보여줘서 아쉽다는 표정까지 읽힐 정도다. 팝계의 이단아 레이디 가가는 고기 드레스를 입고 ‘어플로즈’(applause)를 부른다. 이 노래에선 ‘나는 박수, 박수, 박수를 위해 살아요’라는 가사가 무한 반복된다.

언제부터 우리의 삶은 서로가 아닌 ‘나’만 바라보는 자기도착 세상과 마주하게 됐을까. 그리스 신화의 안타까운 비극의 이미지인 나르시시즘은 이제 모든 유형의 불쾌한 인물을 묘사하는 문화적 용어로 떠올랐다. 저자이자 ‘타임’지의 수석 편집자인 제프리 클루거는 이를 ‘거대한 질병’(자기애성 성격장애)으로 진단하고 나르시시스트를 ‘괴물’이라고 지칭한다.

레이디 가가의 노래는 그래서 나르시시즘의 시대를 더없이 솔직하게 인정하고 열렬히 찬양하는 단적인 사례로 수렴될지 모른다. 나르시시스트는 곳곳에 깔려있다. 영화 스크린, 사무실, 이웃집, 심지어 당신이 잠드는 한 침대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이 존재가 모든 것을 파멸시킨 후에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2006년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는 ‘당신’(You)이었다. 이용자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대의 주체성을 존중한 선정으로, ‘나는 특별해’ 같은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분위기에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다. 이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풍조는 크게 확산했다.

정성 들여 꾸미는 페이스북 페이지는 문화 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고, 예쁜 ‘셀카’ 사진 한 장, 값비싼 물건 등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방식들이 부지불식간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상징으로 통일됐다.

자신에게 도취 되는 성향은 어릴 때부터 유행병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오하이오 주립대 브래드 부시먼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8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누가 수학을 잘하니’라고 물으면 수학을 못 해도 모두 손을 들 겁니다. 노래나 다른 능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이들은 자기가 무엇이든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순진한 자신감이 무모한 자만심으로 발전하는 행태를 사회가 방조하면서 나르시시즘의 기운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아마존에는 ‘자부심’이라는 분류 기준 아래 7만 권의 책이 등록돼 있다. 그중 3700종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인정과 관심, 보상에 대한 채울 수 없는 욕구에 시달리기 일쑤다. 파티에서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은 무대를 빼앗긴 시간으로, 대접을 받는 특권의식은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나르시시즘이 가장 극명하고 순수하게 드러나는 현장은 연애의 세계다. 매력적이고 외향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나르시시스트에 호감을 느끼지만, 관계는 서로를 아껴주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이를 심리학에선 ‘초콜릿 케이크 모델’로 부른다. 처음에는 좋아하면서 달려들지만, 일단 먹은 후엔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여배우 조앤 콜린스는 2010년 자서전에서 1만 2755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했다고 정확한 숫자를 명시한 이 ‘남자’를 나르시시스트의 대표적 인물로 꼽았다. “워렌 비티는 제가 아는 한 저보다 빨리 거울 앞으로 달려가는 유일한 남자였어요.”

‘제2의 워렌 비티’로 묘사되는 인가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수많은 팝스타와 사귄 것으로 유명한데, 헤어질 때마다 ‘그’를 비난하는 노래를 발표하면서 나르시시스트의 성격을 과시하기도 했다.

자기 일은 하지 않으면서 성과만 가로채는 직장 상사 같은 주변의 인물도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이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독창적 나르시시스트, 모한다스 간디나 마틴 루터 킹 같은 대중의 지지로 더 강해진 영웅적 나르시시스트의 예도 있다. 하지만 구원과 화해, 교훈에 둔감한 나르시시스트 대부분은 죽을 때까지 구원을 거부했던 닉슨의 경우처럼 외로운 삶으로 종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은 도수가 높은 술처럼 용기를 북돋우고 원시적 기쁨을 주지만 지나치게 탐닉하면 후회감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며 “사랑할 수 없는 쪽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결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옆집의 나르시시스트=제프리 클루거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400쪽/1만6500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