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문장이 여성의 삶과 만나는 순간

박다해 기자
2016.04.02 07:18

[따끈따끈 새책] 인문학자 한귀은 교수의 '여자의 문장'

누구나 한 번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밑줄을 긋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비슷하다. 그 문장을 조금 더 잘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오래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따로 적어두고 주기적으로 읽어보지 않는 한 말이다. 책을 덮고 복잡한 현실을 살다보면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여자의 문장’의 저자인 인문학자 한귀은 교수(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는 자신이 밑줄을 그었던 문장을 실제 삶 속으로 가지고 온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순간 자신이 느꼈던 감정, 직접 겪는 경험에 문장을 더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통해 사유와 성찰의 범위를 넓힌다.

활자로 머물러있던 ‘죽은 문장’은 그의 삶과 만나며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한 교수는 “텍스트의 문장이 진실이 되는 때는 그것이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밑줄을 그은 문장은 방대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카를 구스타프 융 등 고전부터 피에르 부르디외나 버트런드 러셀 등 인문학자의 저서, 무라카미 류나 박경리의 소설 곳곳에 펼쳐져 있다. 영화 ‘인턴’, ‘리스본행 야간열차’, ‘경주’ 등의 대사나 백석의 시, 심지어 ‘행복의 나라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 가사도 있다.

무엇보다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 시몬 드 보부아르 등 선구적인 삶을 살아간 여성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 여자의 인생을 이야기한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또 엄마로서 살아온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그의 담담한 성찰은 일, 연애, 결혼, 아이 등 수많은 선택과 고민의 연속인 여성들에게 위로와 조언이 된다.

책은 △행복 △관계 △위기와 회의 △사랑과 이별 △나이듦 △여자의 물건 △숙명 7장으로 구성됐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여자의 물건’이다.

팬티, 베개, 머리핀, 고무줄 바지와 면 티셔츠, 자전거까지 성찰의 대상이 된다. 편한 면 티셔츠를 일상복으로 입는 그는 옷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며 공자의 이야기까지 소개한다. ‘논어’에 따르면 공자는 소매와 옷깃의 길이까지 일일이 신경 쓰던 이다. 인문학과 일상이 만나자 고전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수전 손택의 말’ 29쪽)

한 교수는 문장과 삶이 만나 변화를 이끌어내고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자의 문장=한귀은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 272쪽/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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