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운동을 이끌다 체포된 만해 한용운은 3년간 옥고를 치룬 뒤에도 조국독립을 위해 강연과 집필활동을 이어간다.
언론사에서 논설위원을 겸하며 계몽·사회 참여를 촉구하는 등의 칼럼을 쓰던 그는 백담사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완성된 88편의 시가 90년 전 오늘(1926년 5월20일)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시집 '님의 침묵'에 담겨 출간된다.
시집엔 표제시 '님의 침묵'을 비롯해 '알 수 없어요' '복종' 등이 수록됐다. 한용운의 시는 불교적인 비유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이뤄진 서정시로 평가된다. 그는 님의 침묵을 통해 높은 예술적 차원과 사상적 깊이를 선보이며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
대표작인 님의 침묵은 불교의 역설적인 진리를 바탕으로 임과의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만남에의 희망을 표현했다. 얼핏 연애시로도 보이는 님의 침묵은 발표 이후 '님'에 대한 존재에 대해 논란이 이어졌지만 조국독립을 열망한 한용운의 생애에 비춰 '잃어버린 조국'으로 보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는 님의 침묵으로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엔 신간회에 가입해 중앙집행위원으로 경성지회장을 지냈다. 그러다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의 배후자로 검거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불교의 혁신운동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1944년 6월29일 광복을 눈 앞에 두고 입적한다.
위대한 승려이자 저항시인, 독립투사였던 그의 공훈을 기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1967년엔 탑골공원에 '용운당만해대선사비'가 건립된다.
다음은 님의 침묵 전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