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범패 소리에 인생을 담다

김유진 기자
2016.07.02 03:20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현장을 가다] <5-1>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영산재 보유자 구해스님

[편집자주] 일상에 흩뿌려진 삶의 방식들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면 '유산'이 됩니다. 무형문화유산은 그 중에서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즉 형태가 없는 유산이지요. 눈으로만 봐야 하는 유형유산과 달리, 무형유산은 시각&#8231;청각&#8231;촉각&#8231;후각&#8231;미각을 다 사용해야만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답니다. 그만큼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접하기 어렵지만 진짜 우리의 문화, 즉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해져 온 오랜 이야기는 유형유산보다는 무형유산에 훨씬 더 짙게 배어있습니다. 두 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축된 이야기가 담긴 삶의 터전을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인 영산재의 유일한 보유자 구해스님(74). /사진=김유진 기자

"바닷물이 짜다는 건 삼척 동자도 다 알아요. 살짝만 찍어서 혀 끝에 대 봐도 짜구나, 하듯. 부처님 깨달음을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착하게 살자, 이게 부처님의 뜻이에요."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만난 구해스님(74)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의 유일한 보유자, 인간문화재다. 이날은 그가 평생을 살아 온 봉원사에서 영산재라는 큰 불교의식을 거행하는, 1년에 단 하루 있는 특별한 날이었다.

구해스님은 탱화를 그리는 할아버지와 봉원사 주지스님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3대가 대처승인 것이다. 조계종과 달리 태고종은 스님이 가정을 꾸릴 수 있었기 때문. 그렇게 봉원사에서 평생을 보내며, 많은 스승들로부터 범패소리를 배웠다.

"범패소리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건 16살 때였지. 그때만 해도 범패 소리를 배울 스승이 많았어요. 범패를 물려받기 위해서 밥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외에는 열심히 스승님들 따라다니며 공부했죠. 녹음기도 악보도 없었으니까. 오로지 스승의 목소리 한 번 듣고, 여러 번 따라하고. 그게 방법이었어요."

구전심수(口傳心授, 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침). 그렇게 배운 소리는 처음에는 얕았으나 점차 깊어졌다. 범패를 가곡,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악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소리들에 녹아있는 우리네 색채가 범패 속에도 담겨있는 듯했다. 다만 그 울림은 티베트나 몽고의 소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양을 통해 소리를 끌어내는 동양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구해스님(74)은 "영산재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것"이라며 "세상 만사에 영원한 것이 없는 만큼 살아생전에 좋은 인연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유진 기자

"범패 소리의 떠름새가 급하게 몰아칠 때는 시조나 판소리의 소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소리 중 가장 어렵다는 '울력소리'라는 것이 있는데, 하나의 음색으로 수분 간 끌고가는 내공이 담겨있죠." 스님이 인터뷰 도중 예시로 보여준 저음의 짓소리는 끝날 줄을 몰랐다. 숨이 넘어갈 듯 답답하다 어느새 마음을 놓게 되는, 그런 평온함을 주는 신비한 소리였다.

스님에게 영산재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보편적으로 절에서 올리는 의식이라고 하면 망자를 천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산자와 죽은 자 모두의 삶을 '닦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망자가 지은 육신의 죄를 49제의 공덕으로 씻어내고, 살아있는 사람의 길을 미리 닦는다는 말이었다.

"인생사 결론을 짓자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입니다. 모두가 맨 몸,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지요.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동전 한 닢 못 가져간다는 것, 이것을 깨닫는다면 세상 힘들고 어렵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살아생전에 죄를 짓지 말고 많이 베푸십시오. 그것이 저, 그리고 영산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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