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슈. 북한에서는 ‘리광수’, 한국에서는 ‘이광수’라 불리는 사나이다. 그가 1917년 발표한 장편소설 ‘무정’은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지만 그의 친일 행적 때문에 평가절하 받는다. 그는 처음부터 친일 행적을 하지 않았다.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변절했다.
그를 연구한 일본인 학자는 대체 왜, 그의 행보가 근대 일본을 해석하는 틀이 된다고 말할까. 하타노 세츠코 나가타현립대학 명예교수인 하타노 세츠코는 새책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에서 이광수의 일생 전체를 훑으며 그의 눈에 비친 일본을 해석한다.
1892년 평안북도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이광수는 열 살이 되던 해 부모가 콜레라로 사망한다. 친척 집을 전전하던 그는 동학교도가 돼 활동하다 동학의 유학생으로 일본에 간다. 일본에 가던 해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긴다. 18살이 되던 해 오산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지만 재단인 교회와 대립한다. 그는 대륙방랑에 나서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등 전 세계를 떠돌다가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작가로서 삶을 시작한다.
‘매일신보’ ‘홍수이후’ 등에 ‘조선 가정의 개혁’ ‘조혼의 악습’ ‘혼인론’ ‘농촌계발’ 등의 논설을 실어 국내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애국과 친일의 균열은 이때부터다. 이광수는 조국을 삼키려 하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원동력을 ‘욕망’이라 갈파했으며, 쇠퇴한 민족을 재생시키기 위해 우리도 ‘욕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수의 삶은 결국 19세기 후반부터 근대화를 목표로 질주해 온 일본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초기에는 일본 현지에서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받은 전보를 번역해 외신에 제보하고, 외신기자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실상을 폭로할 정도로 일제의 잘못된 행동에 저항했던 그였다. 그러나 ‘민족개조론’을 시작으로 미개한 한국이 일본이 가진 힘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 ‘노예가 노예의 주인이 되는’, 친일의 기본 공식을 따르게 되는 과정이 이 책을 통해 그려진다.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하타노 세츠코 지음. 최주한 옮김. 푸른역사 펴냄. 332쪽/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