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에서 '금수저'까지 언어학자가 읽어낸 '혼밥 시대'

이해진 기자
2016.10.08 07:12

[따끈따끈 새책]우리음식의 언어…'국어학자가 차려낸 밥상 인문학'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말한다. 누군가 죽었다는 뜻으로는 '밥숟가락 놨다'고 표현한다. "밥 먹었냐?"라는 말은 안부 인사로 통용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박두만이 용의자에게 던진 그 유명한 명대사도 "밥은 먹고 다니냐?"였다.

이렇듯 '밥'이라는 단어에는 밥에 대한 한국인만의 정서와 애착이 담겼다. 국어학자 한성우는 삼시세끼를 둘러싼 우리 말들의 다양한 용법이 보여주는 오늘날 사회 풍경들에 주목했다.

국어학자인 저자는 '밥'이란 단어에는 아무리 뒤져봐도 방언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데 신기해한다. 어휘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같은 계통의 말 하나만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밥이 모든 지역에서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음식이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세대별로 '밥'에 대한 의미의 스펙트럼은 미묘하게 변했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이들은 '고봉밥'이란 단어에 익숙지 않다. '고봉'이란 아마도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 '高峰'일텐데 밥 말고는 먹을 게 마땅치 않았던 옛 시절에는 봉우리처럼 밥을 쌓아야 배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밥상의 주인이었던 '밥'은 어느새 다른 '먹을 것'(식:食)들에 자리를 빼앗겼다. 실제로 한 도자기 브랜드가 1940년대부터 출시해온 밥그릇 크기를 보면 지난 70년간 그 용량이 550cc에서 260cc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고봉밥'이 익숙한 아버지 세대와 달리 아이들에게는 '빵'이 밥과 다름없다.

저자는 '혼밥', '집밥의 탄생'과 같은 사회적 변화도 짚어낸다. '집밥'은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집 밥'으로 띄어 쓰는 게 맞다. 하지만 그 쓰임으로 보면 또 '집밥'으로 붙이는 게 맞다. 원래 없던 말이 생겨난 까닭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본래 밥은 집에서 먹는 것이어서 예전에는 '집밥'이란 단어가 필요 없었는데 '식당밥'이 워낙 흔해지다 보니 새롭게 '집밥'이란 말이 등장했다.

'혼밥'이란 말의 등장은 더욱 흥미롭다. 과거 우리는 가족을 가리켜 '식구'라고 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식구(食口)라는 말 그대로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끼니때마다 함께 먹었다. 밥때가 되면 집에 들어갔고 누군가 오지 않았으면 배고픔을 견디며 기다렸다. 하지만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는 세태속에 '혼밥'이 새로이 말의 지위를 획득한 반면 '식구'라는 말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저자는 '금수저론' 대목에서는 국어학자로서 '작은 고집'을 부린다. 점차 계층이동이 어려워지는 사회상을 꼬집은 말임을 알면서도, 굳이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일컫는 말로, 귀족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 '실버 스푼'을 잘못 번역한 '언어적 오류'라고 지적한다.

책에는 우리 음식을 통해 비춰본 우리 역사, 한·중·일 3국의 역학, 오늘날 사회상 등이 흥미롭게 담겼다. 국어학자가 때로는 요리연구가의 혀끝을, 때로는 사회학자의 눈을 빌려 잘 차려낸 '인문학 한상'이다.

◇우리음식의 언어=한성우 지음.어크로스 펴냄.368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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