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문화철도’의 나비효과

오진이 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2017.12.06 09:53

[기고]오진이 서울문화재단 문화철도 TF팀장(전문위원)

최근 1호선 서울시청 역사 내 와이드판과 스크린도어에 광고 대신 등장한 예술작품이 화제다. 지하철역에 광고 대신 그림을 노출하는 시도는 2013년 ‘전시장을 나온 미술, 예술이 넘치는 거리’를 표방한 서울문화재단의 ‘바람난 미술’ 캠페인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지난 9월에 개통한 우이신설선을 통해 역사부터 열차에 이르기까지 예술작품과 문화생활정보를 전달하는 ‘달리는 문화철도’를 선보이고 있다.

2호선과 1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신설동역에는 천경자 화백의 모작 13작품이 전시된 미니갤러리가 조성되었고, 와이드컬러 광고판은 서울시미술관협의회에서 추천한 정연두, 유근택, 이명호 원성원, 이용백, 이상원 등 우리나라 대표 작가 6명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성신여대입구역에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김영나 작가의 그래픽 작품이 역사 플랫폼 벽을 감싸고, 보문역, 정릉역, 솔샘역, 북한산우이역엔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 옆 벽을 따라 아트포스터 액자가 즐비하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 도시철도를 탔는데 주위를 살펴보면 ‘달리는 도서관’이다. 열차 안에는 동네 도서관 정보와 서울 대표 도서관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모서리광고의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촬영하면 해당 도서의 2개월 이용권을 증정했다.

365일 천 명의 사람을 그려온 정은혜 작가의 얼굴 그림과 자신이 그리워하는 것을 그린 정도운 작가의 그림이 래핑된 열차는 ‘달리는 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18년 새해엔 평면 래핑스타일과는 또 다른 입체적인 달리는 문화철도를 준비 중이다.

우이신설선은 열차 내 모서리광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엔 모바일매체의 확산으로 텅텅 비어 있던 모서리 광고판이 열차 한 량마다 하나의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알리는 실험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뜨거운 심장을 팝아트로 그려내 시즌제 티켓을 홍보하고, 세운상가는 리모델링된 다양한 일러스트를 보여준다. 급기야 지하철 3호선 열차 안에 는 신곡을 발표한 아이돌 슈퍼주니어의 활동 연표를 지하철노선처럼 표현하는 광고까지 등장했다.

상업광고를 걷어내고 문화예술을 콘텐츠로 삼는 우이신설선 ‘달리는 문화철도’의 나비효과이다. 그러나 과제는 남아 있다. 2022년까지 성형광고를 없애고, 문화예술광고 비중을 현행 6%에서 2020년 20%대로 높인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대안은 기업이 상업광고 클라이언트가 아닌 문화예술 지원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국민소득 삼만 달러 시대에는 문화예술을 즐기는 시민이 손 큰 소비자가 되기 마련이다.

당장은 상업공간이 없어지고 광고가 사라져 소비마저 위축될까 우려되지만, 휙 지나치는 이동공간이 아니라 지나가다가 발길을 머물게 하는 공간이 된다면 장기적으로 기업 브랜드의 마니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

과거엔 공공교통요금 상승의 저지선이 상업광고나 상업공간 임대였다면, 이제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의 사회공헌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차별화되는 매력적인 사람, 매력적인 기업, 매력적인 도시, 매력적인 나라가 되기 위해선 문화예술 경험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 레일을 까는 문화철도는 오늘도 달린다.

오진이 서울문화재단 문화철도 TF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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