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마음이고 그 마음을 치료받는 것도 마음이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덕목처럼 비친다. 현자의 미사여구가 가득한 책 한 권으로 마음을 달래보기도 하고, 멘토나 심리치료사로부터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위로의 언어를 습득하기도 한다.
이 책은 위와 같은 삶의 규칙에 반기를 든다. 심리는 필요 없고, 컴퓨터 수학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각박한 디지털 세상을 구원할 마술적 치료제인 인간의 위로를 단박에 경시하는 이 태도는 알고리즘이 보여준 수많은 성공적 결실과 궤를 같이한다.
가령 집을 구매할 때, 대다수는 ‘둘러보기’와 ‘뛰어들기’ 사이의 균형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기준을 정할 수 없을 만큼 아파트를 둘러본 다음에, 자신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집이 나오면 산다는 것이다. 이 균형 개념은 옳지만, 그 균형의 근거가 무엇인지 제대로 답변하는 이는 드물다. 답은 간단하다. 알고리즘에 따르면 바로 37%다.
가장 좋은 아파트를 구할 확률을 최대로 높이고 싶다면, 구하는 시간의 37%(1개월을 본다면 11일째까지)는 막연하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는 직관적으로 흡족한 타협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최적의 솔루션이다.
아파트 구하기는 ‘최적 멈춤’이라고 하는 수학 문제의 일종이다. ‘37% 법칙’은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한 단순한 일련의 단계를 가리킨다. 동네를 몇 바퀴 돌아야 주차공간을 찾게 될까, 모험적 벤처 사업에 얼마나 운을 쏟아부어야 수익을 보게 될까, 연애 상대는 또 얼마나 찾아야 할까. 모두 최적 멈춤이라는 알고리즘이 필요한 상황들이다.
페르시아 수학자 알-콰리즈미에서 유래된 알고리즘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자칫 생뚱맞을지 모른다. 0과 1의 디지털 진법으로 회색 지대인 인간사에 ‘해답’을 건네는 시도 자체가 모순으로 비치기 때문. 하지만 알고리즘은 컴퓨터보다 훨씬 더 폭넓게 쓰인다.
게다가 오늘날의 컴퓨터는 단순한 산수 문제를 넘어 사람과 대화하거나 바둑에서 인간을 인기는 일을 도전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런 과제들은 규칙이 명확하지 않거나 필요한 정보 중 일부가 빠져있다.
이처럼 가장 어려운 부류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개발한 알고리즘이 쓰이면서 컴퓨터는 철저한 계산 위주의 방식에서 점점 더 벗어나게 됐다. 우연을 받아들이고, 정확성을 희생시키면서 근삿값을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쪽으로 발전한 것이다.
철학의 시대는 과연 막을 내릴 것인가.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만드는 11가지 컴퓨터과학의 알고리즘과 마주하면 고민과 시각, 논쟁에 대한 철학적 시간 투자가 낭비일지 모른다.
최적 멈춤에 이어 ‘캐싱’은 인간 삶의 온갖 저장 체계와 기억 은행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한 사건을 근거로 알고 싶은 사실의 가능성을 추측하는 ‘베이즈 규칙’은 세계에 대한 간접적인 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장 단순한 것이 최고의 계획일 수 있는 ‘과적합’, 현실과 실제로 타협할 수 있는 ‘완화’, 우연에 맡기는 방식이 때론 최고의 해답이 되는 ‘무작위성’ 등 11가지 알고리즘은 인간의 삶에서 얻은 지혜 이상의 해법을 제시한다.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는 뇌의 오류 가능성보다 그 문제가 지닌 어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철학은 계속 해결해줄 수 있을까.
저자는 “세상은 이제 철학에서 알고리즘으로 움직인다”며 “알고리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기본 구조와 해결책의 특성을 알아낸다면 우리가 얼마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어떤 오류를 저지르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브라이언 크리스천·톰 그리피스 지음. 이한음 옮김. 청림출판 펴냄. 616쪽/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