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금 지급 미루겠다"는 일방적 상생동의서…여행사의 갑질

유승목 기자
2020.10.11 13:15

코로나19 경영악화 이유로 협력사 대금 정산 미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주요 패키지(PKG) 여행사가 현지 협력사(랜드사)에 '상생' 명목으로 수 개월째 밀린 미수금 정산을 회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업계 고질병인 지상비(현지 여행 경비) 미지급 관행에 코로나19(COVID-19)가 겹치면서 불거진 사태다. 대형 여행사마저 휘청일 만큼 업계 전반이 위기지만, 갑을관계에 기반해 일방적으로 계약 이행을 미루고 있단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A여행사가 캐나다 소재 랜드사와 지난 1월까지 여행상품 진행 등의 거래를 통해 발생한 정산금액(약 1343만원) 중 20%(268만원)만 지급하고 현재까지 남은 잔금을 치르지 않고 있다.

랜드사는 현지에서 한국 대형 여행사가 모객한 패키지 여행객을 인도 받아 관광·숙박·교통·가이드 등의 일정을 수행하는 중소 협력업체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대형 홀세일 여행사들은 각지에 위치한 랜드사를 통해 여행일정을 대행하고 여행객들로부터 받은 상품 판매 금액의 일부를 지상비, 수수료로 지급한다.

일방적 '상생동의안' 제시 후 연락두절

2018년부터 거래를 이어 온 해당 랜드사의 가장 최근 계약은 코로나 직전인 지난 1월이다. 원래대로라면 상반기 내 지상비 송금을 완료해야 하지만 정산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산 연기를 공식화하는 상생동의서를 강요했다. 지난 4월 랜드사에 △미지급금 20%만 지급한 뒤 80%는 코로나 사태 진정 및 영업 정상화 후 지급 △추후 재논의 시점까지 가압류 등 일체 법적인 조치를 하지 않을 것 등을 골자로 한 상생 동의서를 제시했다.

4월은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발전한 시기로 전 세계 여행업계가 코로나 리스크가 언제 해소될 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해당 랜드사는 명확한 시점을 언급하는 대신 추상적으로 코로나 진정 후 지급하겠단 약속이 불합리하단 이유를 들어 50%를 선지급해줄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한 푼이라도 급한 상황에서 20%라도 받기 위해 A투어 제안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해당 랜드사는 캐나다·멕시코에서 지사를 운영하는 등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코로나 이후 영업활동이 끊겨 가이드 포함 80명에 달하던 인원을 현재 6명으로 축소한 상황이다. 랜드사 관계자는 "일방적인 상생동의서를 제안한 이후 10월 현재까지 전화는 커녕 이메일 연결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행 갑을 구조, 기울어진 상생안 만들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여행사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방적인 계약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는 대형 홀세일 여행사와 랜드사 사이의 갑을관계 때문이란 분석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여행사가 지상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거나 미수금을 까는 행태가 관행으로 굳어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업계 대표 여행사인 하나투어도 지난해 홍콩 현지 랜드사에 지상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사과하기도 했다.

여행시장이 패키지 중심에서 개별여행(FIT)으로 재편되고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며 나온 초저가 패키지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랜드사 지상비를 깎거나 결산일을 미루는 것이다. 랜드사 대부분이 국내 대형 여행사의 모객에 의존하는 구조란 점에서 이른바 '길들이기' 용도로 쓰일 때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실적 타격이 커지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생을 빌미로 랜드사에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다.

"이미 여행객에게 받은 돈인데 왜 못 주나"

물론 국내 주요 여행사들이 모두 랜드사에 일방적으로 정산을 미루는 것은 아니다. 해당 랜드사의 주요 거래 상대방이었던 참좋은여행은 코로나 이후 업황이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도 2억원에 달하는 정산금을 계약에 맞춰 제 때 지급했다. 다른 여행사들도 시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정산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A투어 측은 자금 여력이 없어 당장 정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영업손실을 내며 휘청거린 뒤 올해 코로나 직격타를 정면으로 맞으며 고꾸라졌다. 올해 상반기 13억4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지난해 130여명에 달하던 직원이 올해 상반기 33명으로 줄었고, 이마저도 이달 들어선 전원 휴직인 상황이다. 관계자는 "현재 회사 존속이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캐나다 랜드사 관계자는 "업계 상황이 어려운 것은 맞지만 정산을 요구하는 금액은 이미 고객으로부터 수금했고, 당연히 랜드사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라며 "현재 받지 못하고 있는 잔액 1000여만원은 우리에겐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피 같은 돈인데 수 개월 째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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