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은 대박, '슈퍼걸'은 고전…'여성 히어로'는 왜 안 통할까 [영화있슈]

차유채 기자
2026.08.12 15:34
[편집자주] 영화만큼 흥미로운 영화계 이야기. 화제의 작품부터 논란, 리뷰, 비하인드까지 [영화있슈]가 전해드립니다.
영화 '슈퍼걸'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여성 히어로'라는 소재 자체가 흥행에 불리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캐릭터의 매력과 성장 서사, 그리고 여성 히어로를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사진은 왼쪽부터 영화 '슈퍼걸',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데이' 스틸컷.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소니 픽처스 제공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반면 '슈퍼걸'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최근 개봉한 히어로 영화들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여성 히어로'라는 소재 자체가 흥행에 불리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히 주인공의 성별만으로 흥행 성패를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캐릭터의 매력과 성장 서사, 그리고 여성 히어로를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비슷한 히어로물? 전혀 다른 성적표
'슈퍼걸'은 제임스 건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으나 아쉬운 흥행을 기록했다. 사진은 영화 '슈퍼걸' 스틸컷.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개봉 직후부터 폭발적인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개봉 13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보다도 5일 빠른 속도를 기록했다.

글로벌 흥행세도 가파르다. 개봉 7일 만에 전 세계 흥행 수익 11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압도적인 흥행 속도를 보이고 있다. 역대 글로벌 흥행작인 '아바타'(29억달러), '어벤져스: 엔드게임'(27억달러)의 기록까지 넘어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반면 약 한 달 먼저 개봉한 '슈퍼걸'은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로 독특한 감각을 선보여온 제임스 건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지만, 국내 관객은 14만명에 그쳤다. 글로벌 흥행 수익 역시 약 1억2600만달러에 머물렀다.

특히 개봉 2주 차에는 74.1%에 달하는 급격한 관객 감소율을 기록하며 코믹스 원작 영화 가운데서도 이례적인 낙폭을 보였다.

'여성 히어로'라서 안 되는 걸까
여성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잇따라 흥행에 고전하면서 일각에서는 "여성 히어로 영화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은 참고 이미지로, 영화 '더 마블스' 속 캡틴 마블(브리 라슨).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여성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잇따라 흥행에 고전하면서 일각에서는 "여성 히어로 영화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더 마블스'다. '캡틴 마블'의 후속작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2023년 개봉 당시 국내 관객 수는 약 69만명에 그쳤다. 글로벌 흥행 수익 역시 약 2억613만 달러로, MCU 영화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성 히어로라는 이유만으로 흥행 실패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여성 캐릭터라도 어떤 서사와 매력으로 구축하느냐에 따라 관객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슈퍼걸'의 흥행 부진에 대해 캐릭터의 성별보다 작품 자체의 서사와 캐릭터 구축 방식에 주목했다.

김 평론가는 "'스파이더맨'과 달리 '슈퍼걸'에는 내적 갈등이나 어려움, 결핍 등의 고민이 충분히 담겨 있지 않았다"며 캐릭터의 깊이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특히 두 캐릭터의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고 분석했다. 스파이더맨은 특별한 능력을 얻었지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인간에서 출발한다. 능력을 얻은 이후에도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실수와 실패를 겪으며 성장한다.

반면 슈퍼걸은 태생적으로 강력한 초능력을 가진 존재인 만큼 캐릭터의 결핍이나 성장 과정을 설계하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남성 히어로 복제판 아닌 여성 히어로를 그려야"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한 여성인가'가 아니라 '어떤 인물인가'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작품에서도 전투 능력보다는 지략이나 성장 과정으로 매력을 보여준 여성 캐릭터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가 있다. 사진은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고현정 분),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 포스터 속 정지안(김혜준 분). /사진=유튜브 채널 '옛드' 캡처, 디즈니 플러스 제공

김 평론가는 특히 최근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여성 히어로들이 '평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오히려 남성 히어로의 복제판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이라는 캐릭터의 특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내기보다 남성 히어로와 마찬가지로 강한 무술과 액션 능력을 앞세우는 데 집중하면서 차별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여성 히어로도 성장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남녀 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너무 완벽한 존재로 그려져 공감을 사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한 여성인가'가 아니라 '어떤 인물인가'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작품에서도 전투 능력보다는 지략이나 성장 과정으로 매력을 보여준 여성 캐릭터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가 있다.

김 평론가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분)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미실은 무술이나 총기 액션을 앞세운 캐릭터가 아니지만 뛰어난 지략과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극을 이끌며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디즈니+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의 정지안(김혜준 분) 역시 단순히 남성 액션 히어로를 여성으로 바꿔놓은 캐릭터와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남성을 무작정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성장 서사를 통해 히어로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표현했다"며 "성장 과정을 통해 전략을 짜는 법과 무술을 하는 법 등을 익히며 공감을 얻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물에 빠져들 수 있는 서사가 우선"
여성 히어로물이 반복해서 흥행에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로는 제작 과정에서 여성 캐릭터의 내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은 참고 이미지로,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블랙 위도우 역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스칼렛 요한슨.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여성 히어로물이 반복해서 흥행에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로는 제작 과정에서 여성 캐릭터의 내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평론가는 미디어 업계 전반에 남성 제작 인력이 많은 현실을 언급하며 여성 캐릭터의 고민과 경험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봤다.

그는 "제작 인력이 남성 위주이다 보니 여성의 내적 고민을 잘 그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현실적인 부분을 접목해 여성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여성 히어로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파이더맨'의 흥행 역시 단순히 남성 히어로의 강세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서사를 쌓아온 캐릭터의 힘에 가깝다.

여성 히어로물 역시 '여성이 주인공인 히어로 영화'라는 사실을 넘어 관객이 그 인물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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