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도쿄 긴자, 20년만에 활기 "예약도 못해요"

도쿄(일본)= 정진우, 김민우 기자
2015.06.18 06:30

['잃어버린 20년' 일본, 부활의 현장을 가다]<1>-①성장률·고용 지표개선 "일본이 살아나고 있어요"

[편집자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2년 말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기 위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통화정책(양적완화)과 재정정책, 성장전략 등 ‘세 가지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는 초기엔 비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등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이 장기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규제개혁을 통한 신사업 창출 등 성장 동력만 확충되면 일본 경제는 완전히 살아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머니투데이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일본의 경제·정치·산업현장을 직접 취재, 출범 시기가 비슷한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의 명암과 성패를 비교·분석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0년전 일본이 겪은 문제점에 대한 현재적 접근과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대한민국의 '길'을 고민해본다.

# 반도는 텅 비었다. 반면 열도는 말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반도를 빠져나간 대륙 사람들이 열도에 모두 모인 듯했다. 일본 최대 전자상점 밀집지인 아키하바라에서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시내면세점 에이산(永山). 오전 10시인데 발 디딜 틈이 없다. 건물 앞에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대형 버스가 빼곡하다. 전자제품과 화장품 등 인기 품목이 진열된 2층에선 중국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탓에 홍역을 앓고 있던 지난 11일 오전 일본 도쿄 시내면세점의 풍경이다.

에이산을 방문하는 고객은 하루 1500~1700명 정도. 지난해 매출은 약 200억엔(1800억원)에 달했다. 전년보다 60% 이상 성장했다. 올해 4월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배 늘었다. 에이산과 같은 일본 기업들은 양적완화 덕분에 나타난 엔저(엔화약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장영식 에이산 대표는 "일본에 온지 22년 됐는데 최근 일본 경기 상황을 보면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한 것 같다"며 "아베노믹스로 기업들 실적이 좋아지고 있고, 국민들도 생활에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찾아간 일본 최대 번화가인 도쿄 긴자(銀座, GINZA). 긴자역 사거리 미츠코시 백화점 주변에선 일본말보다 중국말이 더 잘 들렸다. 돈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싹쓸이' 쇼핑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일본에선 '바쿠가이(暴買, 폭매)'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이 가방이나 옷 등을 대량 구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선 중국 관광객 4명이 일본인 한명이 1년동안 소비할 규모의 돈(약 120만엔)을 쓰고 간다고 본다.

긴자를 중심으로 한시간 동안 주변을 돌아보니 중국인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일본 정부는 올해 1400만명 정도의 관광객이 일본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혁 코트라 일본지역 본부장은 "아베노믹스 이후 엔저로 인해 해외관광객들이 많이 늘었고 기업들도 실적이 개선돼 임금을 올려준다는 얘기들을 들었다"며 "관광객들이 돈을 쓰고 가는 것도 일본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가 활기를 띄고 있다. 아베노믹스 최대 성과인 양적완화(엔저) 등의 영향으로 경제지표가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후 지난 2년반 동안 일본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며 경제성장률과 주가가 상승했다. 아베 내각이 발족했을 때(2012년 4분기) 실질GDP성장률은 -1.2%였는데,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1.5%로 상승했다. 2년만에 2.7%포인트 올랐다. 주가 역시 이달들어 2만500선을 기록하는 등 2년여 전 8000선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일본 치요다구 나가타초 지역 모습. 건설경기 호황으로 도심 곳곳에 호텔과 오피스 등이 들어서고 있다./사진= 한국무역협회 제공

내수는 지난해 4월 소비세 인상(5%→8%) 이후 기저 효과 영향도 있지만 지표가 개선되는 추세다. 일본 백화점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백화점들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7% 상승했다.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4월 소매판매도 전년동월대비 5.0% 증가했다. 지난해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워낙 내수가 둔화된 탓에 조금 더 지켜봐야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본 국민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실적개선으로 인한 임금인상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본 경제단체연합에서 회원사 245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달에 지급하는 상반기 평균 보너스가 2.43% 오른 91만3000엔이었다. 3년 연속 인상으로, 지난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경기 회복의 모습은 경제지표뿐 아니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예약하는데 문제 없었던 도심 비즈니스 호텔 예약부터 힘들어졌다. 도쿄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한 비즈니스 호텔의 경우 주말엔 예약이 100% 완료됐고 평일예약률도 80~90%를 웃돈다. 또 주말 아침 도쿄 인근 고속도로는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차가 막힌다. 불과 2년전엔 주말에도 고속도로는 한산했었다는 게 도쿄 시민들의 얘기다.

일본 도쿄가 20년 만에 깨어나고 있다. 쇼핑가는 발디딜 틈이 없고 도심의 식당, 호텔 등은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다. 사진은 지난 13일 일본 도쿄시내 한 면세점 앞에서 외국인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

직장인들의 회식을 위한 술집 예약도 힘들어졌다. 아베노믹스 이전만해도 기업들 사정이 어려워 술마시는 분위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엔 회식 문화가 살아나면서 도심에 있는 술집들 예약이 조기 마감된다는 것. 실제 기자가 신주쿠와 유락쵸 등 일본을 대표하는 번화가를 돌아본 결과 식당마다 사람들로 넘쳤다.

2년 전과 비교해 택시 승강장에서 대기하며 시간을 때우는 택시들이 크게 줄었다.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개선되면서 택시 이용객도 늘었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교적 비싼 백화점 식품관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쿠다 사토루 일본 아시아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교수는 "매년 5월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와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2년 전만해도 우리 부부밖에 손님이 없었다"며 "지난달 결혼기념일에 갔더니 저녁 자리가 모두 마감됐다"고 말했다.

도쿄 도심 곳곳에선 2020년 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건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유독 호텔 건설이 눈에 많이 띈다. 신규 건물을 짓는 공사현장에 가보면 70% 이상이 호텔 건립이었다. 도로나 터널 등 도심 인프라 공사도 많았다. 건설사들의 일감이 늘면서 고용도 크게 증가했다.

일본 정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 3월 구인배율은 1.15배로 2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구인배율은 일자리 수를 취업 희망자로 나눈 것으로 1이 넘으면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학생으로 한정할 때 수요와 공급 비율은 6대1에 달한다. 각 대학교 취업률은 90% 이상을 넘는다.

히토미 오카자키 일본 리쿠르트 시니어 매니저는 "취직하고자 하는 학생수에 비해 기업들이 뽑고자 하는 인원이 30만명정도 더 많은 상황이다"며 "대기업은 물론이고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도 사정이 좋아져서 신규채용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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