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 일본, 부활의 현장을 가다]<1>-②"이 길밖에 없다"는 아베노믹스, 탈 디플레의 길

# 일본 열도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그 기간만 20년이다. 지난해 일본의 명목GDP(국내총생산)는 4조9000억 달러. 20년 전인 1994년(4조9300억 달러) 수준이다. 미국(17조5300억 달러)과 중국(10조200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지만 GDP규모는 중국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2010년 중국에게 추월(일본 5조5000억 달러, 중국 5조9300억 달러) 당해 3위로 한 계단 내려 앉은 후 계속 그 자리다. 일본이 20년간 멈춰버린 사이 중국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일본은 1992년 이후 2000년까지 연 평균 0.8% 성장했다. 2000년 이후 10여년간 연평균 실질성장률은 0.9%이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연평균 –0.2%였다.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함께 겪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일본에게 지난 20여년은 말 그대로 지옥과 같은 정체된 시간이었다.
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이 지난 11일 일본 도쿄 현지에서 만난 하지메 타카타 미즈호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990년대초 버블이 붕괴하고 나서 일본은 얼어붙은 겨울왕국이 됐다"며 "지난 20년간 눈과 얼음에 갇힌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일본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2012년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집권 이후부터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되찾는 작업의 시점이다. 아베 총리는 경제활성화(디플레이션 탈출)를 목표로 △금융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 등 ‘세 개의 화살’을 내세웠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다.
오쿠다 사토루 일본 아시아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아베노믹스는 '정말 이것 밖에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왔다”며 “20년 동안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고 아베노믹스가 마지막 정책이란 생각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취재팀이 직접 일본 도쿄에서 많은 경제전문가들을 만나본 결과 아직 조심스럽지만 아베노믹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통화 등 금융정책에 대해선 대다수 전문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가상승률 2% 달성을 위해 돈을 풀고 엔저를 유도한 금융정책의 성과가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금융시장에서 조절하던 대상을 기존 금리에서 일본은행권발행액과 화폐유통액, 일본은행 당좌예금잔고 등을 합친 것으로 바꿨다. 연간 약 60조~70조엔이 증가토록 금융시장을 조절한 것이다. 또 일본은행이 보유하는 장기국채의 잔고가 연간 50조엔 수준으로 증가하도록 국채를 매입했다.
돈을 풀어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렸고 기업들의 수익성을 개선해 주가를 띄웠다. 2012년 말 1달러당 84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125엔까지 가치가 떨어졌다. 아베노믹스 도입 전 일본 주가지수(니케이지수)는 8000선이었으나 지금은 2만500선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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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히사시 일본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베노믹스는 적극적인 돈풀기로 엔화 약세를 만들어 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며 “주가의 움직임이 아베 내각의 지지율과 연동되고 있는데, 국민 지지율을 주가로 컨트롤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게 눈에 보이니 국민들의 지지율은 자연스럽게 올랐다.
아베는 또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 10조엔 규모의 '일본경제재생을 위한 긴급 경제대책'을 추진, 사전방재대책과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 등을 추진했다. 이밖에 규제개혁 등 시장 환경을 정비해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성장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간 평균 명목GDP성장률 3%, 실질GDP성장률 2%를 목표로 한 장기프로젝트다.
이처럼 세 개의 화살을 쏜 아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실질GDP성장률은 아베 내각이 발족했을 당시 -1.2%였는데 지난해말 기준으로 1.5%까지 상승했다. 실업률도 같은 기간 4.3%에서 3.4%로 낮아졌다. 경상수지는 -2307억엔에서 1조4401억엔으로 대폭 개선됐다. 지난해 4월 소비세 인상(5%→8%)으로 경기가 한풀 꺾였지만 지난해 말부터 다시 개선되고 있다.
세 개의 화살 중 첫번째 화살과 두번째 화살이 제 역할을 하면서 최우선 과제였던 디플레이션 탈피는 어느정도 달성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수히코 타니가와 와세다대학교 상학부 교수는 "아베노믹스가 지난 2년여 동안 일본 경제를 계속 나아지게 하고 있다"며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있고, 성장률을 비롯해 각종 경제지표들이 개선되고 있는 게 눈에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장기간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으로 가계소비가 위축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 실적 악화 등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세수부족에 따른 재정적자와 저출산 고령화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지난 20년간 패배주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을 희망의 섬으로 건져 올렸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경기가 꿈틀거리면서 다시 예전의 명성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는 얘기다.
이같은 일본의 달라진 경제모습이 ‘정치적 안정’ ‘정책의 일관성’ 의 덕분이란 평가가 많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아베 내각에 힘을 실어줘 일관된 목표의 정책을 펼칠 수 있게 했고 아베 내각도 명확한 목표 설정 후 일관된 정책 추진을 했다는 의미다. 실제 ‘내각의 정책 입안 → 여당의 추진력 → 경제 활성화 법안 입법 → 내각의 정책 추진’ 등의 선순환이 형성되면서 정책의 힘은 배가됐다.
토대는 여전하다. 2014년 12월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각각 290석과 35석을 차지해 총 의석수 475석의 2/3인 317석을 상회하는 압승을 거둬 탄력을 받았다. 일각에선 아베노믹스 외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 일본 국민들의 뜻이 정치에 반영된 결과란 분석도 나온다.
장상수 아시아대학교 특임교수는 "아베 총리는 국민들에게 경제 부활을 위해선 '이대론 안된다', '이 길 밖에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며 "정치적 안정을 토대로 각종 정책들을 추진한 결과 국민들의 신뢰는 높아졌고, 좋은 실적을 내놓으면서 일본 사회 전체적으로 활력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