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개혁을 위한 경영계의 강수는 사실 제도개선을 추진하면서 이미 예견됐던 바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지난 2004년 이후 11년만에 최초로 제도개선을 결의하고 제도개선위원회를 통해 이를 논의 중이다. 노동현장 상황이 격변하는 가운데 11년간 매년 최저임금 금액을 제외하고는 개선된 제도가 없다. 내년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경영계를 중심으로 제도개선 필요성이 대두됐고, 노동계도 이에 합의했다.
◇최저임금 적용기간 1→3년 변경, 업종·지역별로 차등=경영계는 그간 구상해 온 내용을 21일 제도개선위원회에 제출한 발제문에 모두 담았다. 원론적 제안을 담은 노동계 요구안과는 달리 개혁에 가까운 내용들이 다수 포함됐다. 현재 매년 결정하는 최저임금을 3년마다 결정하고, 인상 혹은 인하 폭을 정부가 정하도록 하자는 제안 등이 대표적이다.
경영계 측은 발제문을 통해 "최저임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소비자물가는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부터 지속적으로 안정화되고 있어 최저임금을 매년 조정할 당위성도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4%(2000~2005년)에서 2.2%(2011~2014년)로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는 거다.
경영계는 또 매년 최저임금 결정으로 노사 간 불필요한 마찰이 발생하고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이 다년간 적용될 경우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고용이 보호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경영계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급격하게 소비자물가가 변경될 경우 최저임금을 추가로 조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또 최저임금 결정은 최종적으로 정부가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사는 의견만 진술하고 정부가 정한다는 거다. 경영계 자료에 따르면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다수 국가들이 최종 결정권을 정부에 주고 있는 상태다. 네덜란드나 미국, 러시아 등은 아예 정부가 입법해 결정한다. 사회적기구가 결정하는 곳은 벨기에, 그리스, 멕시코 정도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는 상여금과 식대 등 각종 수당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여금과 숙박비 등이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기업들이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영계 주장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최저임금이 높은 나라들이 대부분 상여금과 숙박비를 포함시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최저임금이 낮아보이는데 착시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택시 업종은 초과운송수입금이나 부가가치세 경감세액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경영계 측은 "일부 군지역 택시업체가 도산하거나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개별사업장의 경영난을 극복할 제도개선이 시급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습근로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감액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더 늘리고, 감액률도 10%에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두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방향의 정책설계다.
경영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제도 도입 방안도 구체화했다. 경영이 어려운 업종의 최저임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문제점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최저임금법을 개정, 지역별 최저임금제도의 근거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다. 중앙과 지방의 최임위를 분리 설치하는 내용도 제안했다. 직능별로, 또 연령대별로도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최저임금 매년인상 관행에 제동, 노사 충돌 예고=경영계가 제시한 안은 최저임금 제도개선의 초안으로, 노사와 공익위원들은 연말까지 양측 제도개선안을 놓고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경영계가 발제문을 통해 최저임금이 매년 인상되는 현재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노사 간 적잖은 갈등이 예상된다. 경영계 발제 내용 중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은 이미 노동계가 크게 반발하는 내용이며, 기타 새로 포함된 내용들도 모두 최저임금 인상폭을 줄이는 제도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3년 단위 최저임금 결정은 엄연히 물가가 오르는 상황을 감안할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정부가 최저임금을 정하게 하자는 것 역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불가능한 주장이며, 회의 내에서 경영계의 부당한 주장에 대해 단호하게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노동계가 주장하고 있는 최저임금 결정기준 등 생계비 범위 조정 역시 경영계에서 난색을 표하는 내용이다. 노동계는 현재 1인 독신 근로자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는 생계비 기준을 가구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경영계는 이에 대해 대부분 최저임금 대상자들이 미혼 청년 근로자인 상황에서 전체 통계를 왜곡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경영계가 수위 높은 최저임금 제도개선안을 들고나온 배경에는 최근 노동개혁 등을 둘러싸고 미묘해진 노사정의 역학관계가 있다. 노동개혁 과정에서 노동계는 민감한 사안을 모두 대타협안에서 제외시켰고, 반면 경영계 내부에서는 특별히 얻은 것이 없다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던 일반해고지침마련, 불리한취업규칙변경 등 2대 쟁점은 추후 논의 과제로 분류됐다.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노동개혁 법안 처리에 밀려 2대 쟁점에 대한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이다.
이 가운데 최저임금 제도개선에 대한 의견교환이 본격화되면서 경영계가 일단 강한 톤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노동계에 밀리는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제도개선 과정에서도 실리를 챙기기 어렵다는 진단 때문이다. 최저임금 3년 주기 등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강수를 전면에 배치한 것도 향후 교섭의 여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경영계의 숙원인 업종별 최저임금 적용을 관철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거다.
노사의 논의를 관망하고 있는 정부도 결국 쟁점은 업종별 최저임금 적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다양한 경영계 안이 제출됐지만 핵심은 업종별 최저임금 적용 문제일 것"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노사 간 줄다리기가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