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직 장차관 '행정법인' 나온다..'합법 로비스트'?

세종=유영호 기자
2015.11.19 03:25

관피아방지법에 고위관료 줄줄이 행정사 취득… "퇴직관료 생계길" vs "벗망 벗어난 전관예유" 공방

장·차관을 지낸 고위관료 출신 행정사(行政士)가 다수 소속된 일종의 '행정법인(行政法人)'이 출범한다. 행정사는 인허가 등 행정과정에서 의뢰인의 편의와 이익을 관철하는 '행정지원' 업무를 대행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로비'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대정부 로비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공직사회에서는 지난 3월 '관피아방지법(개정 공직자윤리법)' 시행으로 재취업길이 막힌 고위관료를 중심으로 행정사 자격 취득이 잇따르고 있는데, 전관예우라는 적폐를 바로잡겠다고 도입한 관피아방지법이 오히려 '로비스트'를 양성하는 모양새여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8일 머니투데이 기자와 만나 "A 전 장관을 중심으로 행정사 자격이 있는 퇴직 고위관료가 모여 이른바 '행정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라며 "장·차관 출신은 물론 부총리 출신 인사도 고문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직 중앙부처 실·국장급도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기수가 높거나 나이가 많아 곧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인 사람은 긍정적 반응"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행 행정사법에는 법무법인과 같은 '법인' 설립을 금지하고 있어 합동사무소 형태로 '행정법인'을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사는 행정업무의 원활한 운영과 국민의 권리구제를 위해 도입됐다. 행정사는 정부(행정기관)와 관련된 간단한 서류 작성 및 제출 대행부터 행정부 법령 및 정책에 대한 자문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 경력직공무원 또는 7급 이상의 특수경력직공무원으로 10년 이상 근무하거나 6급 이상의 직위에 5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시험을 면제하고 자격증을 발급한다.

행정사는 과거에는 주로 중하위직 출신 공무원들의 생계형 수단으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 관피아방지법으로 퇴직후 재취업길이 막힌 고위관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3년과 지난해 행정사 자격을 취득한 15만4519명 가운데 99.8%인 15만4187명이 공무원 경력으로 행정사 자격을 취득했다.

특히 행정사는 인허가 및 면허, 권리의무, 대정부 분쟁에 대한 업무까지 대리, 사안에 따라서는 행정과정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를 수행할 수도 있어 기업의 수요도 적지 않다. 오랜 행정 경험과 인맥을 갖춘 고위관료는 강력한 '로비력'이 발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금융위원회 출신 국·과장은 올해 초 광화문에 행정사사무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금융위 근무 경력을 활용해 하나은행으로부터 하나·외환은행 통합 업무를 위임받아 대행하는 등 금융권 대정부 업무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시각은 엇갈린다. 공직사회에서는 생계가 막힌 퇴직 관료들의 합법적인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다. 반면에 또 다른 모습의 전관예우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형 '행정법인' 탄생으로 대관업무 시장이 요동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재는 대형 법무법인에서 퇴직 고위관료를 영입해 대기업의 대관업무를 사실상 독점해왔는데 '행정법인'이 자리 잡으면 해당 업무 상당수가 이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중앙부처 실장은 "관피아방지법, 공무원연금 개혁 등으로 공무원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아직 초기 단계지만 '행정법인'이 자리 잡으면 역량 있는 공무원들이 줄줄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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