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각각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식 대선후보가 된 가운데 두 후보 모두 미국의 국익을 앞세운 보호무역주의와 각종 무역협정의 재협상 또는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어 수출주도형인 우리 경제에 끼칠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선출된 클린턴은 28일(현지시간) 후보수락 연설에서 "우리가 불공정 무역협정에 단호히 ‘노’라고 말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중국을 겨냥했다. 앞서 21일(현지시간) 발표된 ‘2016민주당 정강’은 “지난 30년간 미국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많은 무역협정을 체결했다”며 “과도한 경제자유화보다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끌어내는 무역정책을 개발하고 기존 협정은 재검토하겠다”고 명시했다.
클린턴은 지난 2012년 3월 한미FTA 체결당시 국무장관으로 이를 진두지휘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자유무역을 지지해 왔다. 하지만 미국 대선주자로 경선에 뛰어들면서 무역협정 재검토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의 지지층 흡수 목적과 함께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조합의 표 이탈을 막기 위해 보호무역 강화로 정책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한층 강도가 세다. 일찌감치 ‘아메리카니즘(미국 우선주의)’을 앞세운 사실상의 신고립주의를 표방한 무역정책을 추구해왔다. 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도 “우리의 계획은 미국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클린턴이나 트럼프 중 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간에 보호무역 강화는 피할 수 없는 셈이다. 이 경우 미국과의 교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내고 있는 우리나라는 무역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 무역수지 흑자는 258억 달러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은 모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해 트럼프는 이미 미국내 ‘일자리를 죽이는’ 주범으로 지목했고, 민주당 역시 ‘이미 맺은 무역협정도 재검토할 수 있고, 모든 무역정책은 미국 내 일자리 증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클린턴·트럼프가 나란히 미국의 이익을 앞세워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점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중국과의 무역의존도가 높은 만큼 연쇄 충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는 3657억달러 적자로 2위인 멕시코보다도 적자가 6배나 많은 수치다.
특히 중국을 겨누고 있는 ‘칼’이 환율조작을 통한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도 우려스럽다. 클린턴·트럼프 모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제재를 가하겠다는 구상인데 우리나라까지 피해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환율조작 제재는 특정 국가보다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국가들을 그룹으로 묶어 제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재무부는 지난 5월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에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대만을 포함시킨 바 있다.
이와 관련, 정부도 대선주자들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고심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이 한·미 FTA로 피해가 많다고 하는데 상품 분야는 우리가 흑자를 내지만 서비스 분야는 미국이 큰 흑자를 내고 있다”며 “미국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어 우리 기업들이 불합리한 조치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의 수출비중이 10% 안팎으로 중국보다 작지만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는데 트럼프의 경우 당선된다면 FTA재협상 가능성을 실제 배제할 수도 없을 것 같다”면서 “미국이 보호무역 기조 강화하면 당장 대응방법이 마땅치 않은 만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발언들이 선거를 의식한 이미지메이킹의 차원인 만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미국이 무역으로 손실 보는 것은 서비스와 소득수지로 거의 회복하고 있다”며 “FTA의 1단계는 무역협상이지만 2단계는 서비스와 투자 부분인데 무역을 부정하면 2단계로 나아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글이나 애플 등 미국기업들이 수익의 40%를 해외에서 거둬들이고 직접투자나 포트폴리오 투자로 인한 배당과 이자 등 소득수지가 천문학적이라는 것이다.
무역을 통한 손실을 언급하는 것은 자동차 등 종업원수가 많고 노조가 강성인 제조업계 지지를 의식한 것이나 실제 교역구조를 감안하면 집권 이후에는 국익에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류현주 한국은행 국제경제연구실장은 “대선주자들이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최근 철강제품에 대해 반덩핌 관세 물리기도 했지만 일단 선거전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누가 당선되든 기존 국제관계가 있기 때문에 (FTA재협상 등을 실행하는데) 제약이 있을 것”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