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굿바이, 고리 1호기' 아쉬움 짙게 남은 마지막 가는 길

기장(부산)=유영호 이동우 기자
2017.06.18 15:35

지난 16일 긴장감 감도는 발전소…지역은 아쉬움 여론 속 "안전한 해체 기대"

고리 원전 1호기 크레인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 고리 1발전소.’

영구정지를 앞두고 막바지 운전이 한창이던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찾은 지난 16일. 발전소 입구의 대형 크레인에 붙어 있던 문구는 대한민국 원전 역사가 시작된 곳임을 짐작게 했다.

두 차례나 신원을 확인하는 삼엄한 경비를 거쳐 발전소 내부로 진입하자, 옆에서 말하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위잉위잉’ 하는 큰 소리가 건물 내부에 울려 퍼졌다. 원자로의 열로 물을 끓여 만든 증기로 터빈을 가동하는 소리였다.

귀마개를 하지 않고는 내부에 서 있기조차 힘든 굉음이었지만, 고리 1호기의 심장이 그만큼 뜨겁게 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물 내부 곳곳에서는 ‘정성스런 점검으로 영구정지까지 안전운전’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리 원전 1호기의 주제어실 모습.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고리 1호기의 모든 조작이 이뤄지는 주제어실(MCR)에 들어서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주제어실에서 근무하는 작업자들의 표정에는 웃음기 대신 진지함만 가득했다.

주제어실 바닥에는 노란 선(Yellow Zone)과 붉은 선(Red Zone)으로 접근 구역이 구분돼 있었다. 노란 선 안쪽은 발전팀장의 승인을 받은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었고, 제어판과 가까운 붉은 선 안쪽은 운전원 외에는 어느 누구도 진입이 불가능 했다.

실제 기자가 실수로 붉은 선 안쪽에 발을 디디자마자 한 직원이 정중하게 선 밖으로 나가주길 부탁했다.

당시 고리 1호기 주제어실의 상황판은 오후 2시 기준 원자로 출력 99.1%, 발전기 출력 603㎿을 나타내고 있었다. 상황판 바로 밑에는 붉은 선으로 감싼 플라스틱 커버 안에 계통분리 버튼이 위치해 있었다. 박지태 고리원전 1발전소장은 “이 버튼을 누르면 원전이 정지된다”고 말했다.

1979년 한수원에 입사해 1984년부터 33년간 고리 1호기에서 근무했다는 박 소장은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간 근무하면서 고리1호기와 역사를 같이 했다”면서 “2년 전 이사회에서 영구정지 결정이 났지만, 아쉬움은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리 원전 1호기 전경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실제 주제어실과 터빈실을 포함한 고리 1호기 대부분의 시설은 눈으로 봐서는 40년이 된 원전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고 잘 정비된 모습이었다. 원자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비들은 2007년 계속운전을 위해 교체됐다. 터빈실을 가득 채운 수 많은 파이프는 페인트 하나 벗겨진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관계자는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에 들어가는 것은 혹시 모를 안전성 문제에 대비하는 점도 있지만, 해체산업 발전을 위한 대승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주제어실과 터빈실이 있는 건물 밖으로 나오니 원전의 상징인 높이 60m, 지름 35m에 달하는 거대한 원자로 격납고가 나타났다. 격납고에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재펌프 등 핵심 시설이 들어있다. 방사능 물질에 노출될 우려가 있어 내부로의 진입은 불가능하다.

고리 1호기는 대한민국 원전 역사에서 ‘최초’ 그 자체다. 최초로 상업운전을 실시한 원전이면서, 최초로 설계수명 30년이 다한 원전이기도 했다. 2007년에는 계속운전(10년) 허가를 받아, 실제 연장 운영에 들어간 최초의 원전이다.

지난 40년간 고리 1호기가 생산해 낸 전력은 1억5000만㎿에 달한다. 부산시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의 34배다. 고리 1호기는 지난해에만 부산시에서 쓴 전력의 106%를 만들어낼 정도로 성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리 1호기 인근 마을에 붙어있는 플래카드 / 사진=이동우 기자

이 때문인지 고리 1호기가 위치한 기장군 장안읍 주민들은 떠나는 원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고리원전본부 입구에는 원전 영구정지를 반대하는 과격한 글귀의 플래카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리원전본부 인근 식당에서 일하는 김모씨(48)는 “부산, 울산에서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원전을 신경 쓰고 살아본 적이 없다”며 “고리 1호기가 그간 고생을 많이 했고, 기왕 해체한다고 하는 거 안전하게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고리 1호기에 이어 방문한 신고리 4호기는 운영을 위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입구에는 ‘원전 수출의 효시’라는 비석이 서 있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에 수출된 3세대 원자로인 APR1400이 적용된 원전으로, 주변 송전탑의 크기부터 고리원전본부의 송전탑을 압도하는 모습이다.

현재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심의가 진행 중으로 내년 8월이면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고, 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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